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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3년 10월 3일 / 高宗 20 / 癸未
날 씨 맑음
내 용

3일 맑음
또 의논해서 문중에 호소문을 보내드렸다. (이것을 쓴 사람은) 幼學 李玉祥, 李在璜, 李能立 등이다.
삼가 생각건대, 저희의 선조를 모시는 옥산서원에서 新儒들이 일으킨 사변은 직접 아뢰는 호소문을 드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삼가 城主와 府尹의 제음을 통한 교시를 꿰뚫어 보면, 大君子가 품은 풍성한 德을 감동하여 읊조리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공손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마침내 다시 일을 깨끗하지 못하고 번거롭게 하는 것은 변괴가 가면 갈수록 더욱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氣焰은 갑자기 배나 증가하여 求仁堂에 난입하고, 神門을 에워쌌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선출한 有司라는 자는 齋服도 입지 않고, 묘지기도 기다리지 않고 몰래 들어가 분향을 하였습니다.
또 이번 초하루 향례에는 무뢰배 100여 명을 끌어 모아 기한보다 앞서 서원의 강당에 진을 치고 차지하고, 사방에 있는 서원의 문을 닫고, 문마다 무리를 나누고, 횃불을 설치하여 받쳐 들고 지켜 서서는 이름이 舊儒라고 하는 사람은 감히 한 걸음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日官과 제기를 옮기던 有司를 쫓아내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또한 松壇에 들어가는 길에서 종일토록 기다리며 조금 바르지 못하게 되는 것을 무릅쓰고 모임을 깨부수려하였습니다. 그래서 날이 저물어 피곤이 심하고, 저녁때가 이르렀어나 음식물을 준비하여 제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친족 가운데 서원 마을에 거주하는 한 사람이 있어 부득이 거기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 먹으려는 때에 또 몽둥이를 가진 수십 명의 무리가 집안 마당에 돌입하여 손이 닿는 대로 그릇을 깨부숴 흩어진 음식이 땅에 어질러졌습니다. 또 이러한 이유를 가지고서 그 집을 훼손하고자 하여 높이 솟은 마룻대와 버티고 선 처마를 내리쳐서 한 바탕 뒤집어놓았습니다. 세상에 어찌 이런 극단적인 변괴가 있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60년 동안 저들이 서원에서 소란을 일으킨 것이 간혹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전후의 監營과 官府에서 (선현의 서원을) 지극히 높이고 호위하려는 뜻을 엄히 밝힌데 힘입어 오히려 돌아보고 두려워하여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들이 말하기를, "감영과 관부의 이르는 것이 이와 같고, 우리에 대해 規戒하지 못함이 이와 같으니, 흘려버릴 수 없는 한 번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하고자 하는 바를 다하지 못하겠는가?"라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무리를 무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돈을 분배하여 거두고는 의기양양하게 서원에 드나듭니다. 여기저기서 취하여 자신의 몸을 살찌우는 것은 남의 힘을 빌려서 의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 사이에서 멋대로 행동하고, 당초 이 일을 만들어 낸 것은 진실로 溪亭이 아닙니다. 溪亭의 이름을 빌려서 주동이 된 자는 溪亭으로 서원에 있으면서 내부[肘腋]의 세력을 가졌습니다. 溪亭을 전체 家門으로 말하면 종손이 되고, 가문의 어른이 되니 의리를 지킴이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조금 식견과 사려가 있는 사람은 또한 원래 선비의 한 사람임을 알기에 생각하지 않고 저들 때문에 마구 처단하게 되면, 하찮은 것[蓬蒿 ; 쑥]이 줄어들도록 뒤바뀌게 되지만 조상의 묘소에 크게 미안할 것입니다. 그리고 몰래 근심과 탄식을 품어 갑자기 함께 의논하지 못할 자는 모두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이와 같이 된 것은 후손으로 하면 李鍾壽李在謙이 수괴가 되고, 마을 사람으로 하면 辛余海孫星煥이 수괴가 됩니다. 그리고 그 무뢰배로 거칠고 사납게 구는 자들은 단지 술을 마시고 호기를 부리며 웃통을 벗고 위세를 부릴 줄만을 아니 저희는 그들과 견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힘으로 더욱 방자하게 구는데도 감영과 官府에서 또한 징계를 하지 않으니,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습관은 갈수록 더하여 이와 같이 극단적인 것에 이른 것입니다. 저희는 몹시 절박한 심정으로 지금부터 선조의 묘소에 영원히 하직하고, 양양히 오르내리는 혼령에 典翰 공을 만나면 현손이 巡按使가 되었으나 선조의 서원을 지켜내지 못해 400년 동안의 맑은 향기를 하루아침에 올릴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는 저승에서 다른 날 또한 도움을 받았다고 아뢸 수 없습니다. 자손이 된 처지에 고을의 선비로서의 차례가 있음을 기다리지 않고 소송을 다투니, 먼저 이렇게 원통함을 호소합니다. 오직 합하께서 저희에게 죄가 있다고 여기시면 저희에게 죄를 주시고, 저들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저들에게 죄를 주십시오. 합하께서 관찰사의 입장을 없애고 한 고을 선비의 풍조를 일소하기를 천번 만번 지극히 간절하게 호소하기를 다합니다.
제음 ; 앞서의 제음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진실로 이러한 일이 있다면 선비로서 대접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만일 이러한 일이 없다면, 책임은 訴狀을 쓴 선비에게 돌아갈 것이다. 전후의 두 번은 느슨한 제음이니, 한꺼번에 회수한 후에 일의 유무를 조사하여 사실대로 보고할 것이다.
(제음과 訴狀이) 12일에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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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三日晴。
又議送呈門狀。幼學李玉祥李在璜李能立等。
伏以生等先祖玉山書院新儒事變。面稟之狀訴之不一而不二矣。向伏承洞見城府之題敎。感誦大君子包含之盛德。而今不敢恭竢。究竟復事煩瀆者。以變怪之愈往而愈甚也。彼輩氣焰。忽地增倍。攔入求仁堂。圍匝神門。深所出有司者。不着齋服。不須廟直。潛入謁焚香。而又於今朔。招引無賴百餘。前期屯據院堂。而四鎖院門。每門分隊設燎。捧挺以守之。使名爲舊儒者。無敢一迹近側。致逐日官敦運之有司。少不憚忌。又於入路松壇。終日等候。欲蒙少不潔而爲致打之會。暮而罷甚。至夕食而不得供億。生等族親。有一居院村者。不得已於此乎食。而比其方食。又有持杖數十輩。突入內庭。隨手打碎盤盂。薤粉飮食塗藉。又以執此之故。而欲毁其家。掀棟支宇。打成一場廝倒。世上豈有如許極變怪乎。盖自六十年今日。而渠輩之作鬧院中。不或無之。而尙賴前後營府家嚴明尊衛之至。猶有所顧怵而不敢者矣。至於今番。則渠亦曰營官之至爲如此。吾輩之不規也亦如此。曠載一遇。而吾安得不盡吾所欲爲乎。一方呼聚。一方排斂。揚揚以出入也。以左右取而肥吾身者。又不無憑藉。逞行於其間者。而當初玆事之釀出。實不在溪亭。而借溪亭爲主者。以溪亭在院。有肘腋勢也。就以溪亭全門而言之。其宗孫也。其門長也。執義不然。其中稍有識慮者。亦知其原儒之一。不顧而自渠輩擅便。則蓬蒿轉成貶損。祖廟之爲大未安。而潛懷憂歎。頓不與議者。比比之矣。今所以如此者。不過以孫則李鐘壽李在謙。以鄕則辛余海孫星煥三數人爲之魁。而其無賴麤暴。祗知以使酒生豪。袒臂作威。生等卽不與之較。而愈肆以力。營府又不爲之懲。而愈習以亂。至於如此之極者也。生等痛痛迫迫之情。自今日永辭祖廟。而洋洋陟降之靈。其不曰爾逢典翰公。賢孫爲按使而不能保守祖院。使四百年淸香。一朝焉而不得升馨也云爾。則生等九原他日。又無以藉手歸白矣。爲子孫地。不待鄕有儒之次第。爭訴而先此鳴寃。惟閤下。罪生等則罪之。罪彼則罪之。無使閤下觀風地。而使一邦儒風而掃地。盡千萬血懇號訴之至。
題。前題不云乎。眞有是事。則不可以儒者待之。苟無是事。則責有所歸於狀儒。前後兩是甘題。一倂還收後。事之有無査實報來向事。
十二日回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