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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3년 9월 15일 / 高宗 20 / 癸未
날 씨 맑음
내 용

15일 맑음
닭이 울고 난 뒤 각 마을에서 기별을 듣고 잇달아 이른 사람이 30여 명이었다. 새벽부터 저들은 빙 둘러싸고 사납게 외치며 지극히 위태롭고 두렵게 하였다. 묘지기가 사당의 문을 열고서 행사를 고하는 말을 하기도 전에 李鍾壽가 도복을 착용하고 소매에서 儒巾을 꺼내 앞장서서 가로질러 들어가서는 스스로 이미 분향을 마치고 나왔다고 하였다. 비록 이치에 근거해서 책임을 밝혀야 하지만, 소위 말로써 다툴 수 없는 자였다. 왜냐하면 저들의 어린 무리들이 스스로 神門을 잠그고 묘지기를 윗마을의 별묘에다 가두어두었기 때문이었다. 本任이 장차 향례를 알리려면 묘지기를 불러와야 하지만 전달할 말을 보내지도 못한데다 집사도 끌고 갔기 때문에 거행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향례를 빠트리고 자리를 파하였다. 변고가 이러한 것에 이르고, 악인을 미워함에 어찌 말이 없고자 할 수 있겠는가? 이날 관청에다 공문을 올렸다.
삼가 생각건대, 본 서원의 시끄러움을 일으키는 단서는 이미 전후의 탄원서로부터 우르르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오늘 망향례의 자리에서 本村 李鍾壽가 삭향례 전에 사사롭게 有司와 묘지기를 지명하고, 향례를 거행하기도 전에 재계할 때의 옷[齋服]을 입지 않고 앞장서서 가로질러 들어가서는 자신이 분향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이치에 근거해서 책임을 밝히려했습니다. 그러나 禮에 따르려는 本任을 물리치고, 향례를 올릴 때는 스스로 神門을 잠그고 묘지기를 에워싸서 붙잡아놓고는 거행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향례를 빠트리게 이른 것은 서원을 건립한 이후 있지 않던 변고입니다. 수석의 자리에 계신 우리 성주 합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날마다 선현을 높이 호위하고 받들려는 뜻이 진실로 많은 선비들의 마음보다 아래이지 않으시면, 반드시 엄히 단속하고 바로잡는 도리를 가질 것이니, 감히 한목소리를 내어 특별히 엄한 가르침을 내려 서원의 체면을 간직하고 선비의 趨勢를 바로잡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음 ; 함께 같은 조상을 높이 받드는 곳이라면 마땅히 예로써 양보하고 일이 잘 되도록 변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고집하여 양보하지 않으니, 어찌 사림에 부끄러움을 끼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탄을 이길 것이 없도다.
재임이 예에 따라 堂中과 수석에게 초록을 올렸으나, 수석은 봉한 채로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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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五日晴。
鷄鳴後。各里之聞奇追到者。三十餘員。曉頭彼輩圍匝咆哮。極涉危怖。廟直才開廟門。而未及告行之前。李鍾壽以所着道服。袖出儒巾。挺身徑入。自謂已焚香出。雖據理曉責。而所謂不可以口舌爭者也。彼少年等。因自鎖神門。手戞廟直。囚置上村別廟矣。本任將香謁。廟直招致。而不放送傳喝。而因牽執使。不得擧行。竟闕香而罷座。變至于此。寧欲無言惡惡。是日文報于官。
伏以本院閙端。業已仰悉於前後狀帖。而不意今日望香之席。本村李鍾壽稱以朔香前。私券有司及其廟直。擧行之前。不着齊服。挺身徑入。自謂焚香。民等據理曉責。而本任拼依禮。上香之際。自鎖神門。牢執廟直。使不得擧行。而致此闕香者。卽建院後所未有之變也。何念我城主閤下莅在首席乎。日崇衛尊奉之意。實不下於多士之心。則必有所以嚴戢糾正之道。爲敢齊聲。仍懇特下嚴敎。俾存院體。以正士趨。千萬祈懇云云。
題。俱是同祖崇奉之所。則因當禮讓周旋。而如是相持。豈非貽羞士林乎。不勝慨歎。向事。
齋任依例。呈草于堂中與首席。席封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