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 01권 > 1883년 > 7월 >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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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3년 7월 15일 / 高宗 20 / 癸未
날 씨 맑음
내 용
玉院事實
순상 참판 趙康夏
경주부윤 참판 金元性(1882.11~1885.02)
▣▣본 옥산서원에서 신유들이 일으킨 변고는 점차적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그 전후의 시작과 끝이 그 당시의 일록에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己未年(1859) 이후로 수십 년 동안 미봉책으로 지내오면서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년 전부터 회재 선생의 서손 후예로 覺里[신광면 우각리]에 거주하는 진사 在榦이 감히 분수를 감추고 이치에 어그러지는 마음을 일으켜 일을 만들어내니, 본 서원의 말이 퍼져나가 들려오는데 일이 아주 근거가 없기에 듣고서 그냥 버려두었다.
그런데 7월 14일 都色의 告目 안에 杜洞에 사는 掌議 韓有鍾가 서원에 와서 "고을의 선비들이 차례로 찾아와서 [서원의 일에 대해] 말하니, 일찍이 퍼져나간 말들은 반드시 점차로 시끄러움을 일으킬 것이니 재임이 맡아서 서원에다 올려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15일 맑음
향례를 마치고 저 무리들, 이른바 고을의 선비라는 예닐곱 사람이 곧 임원을 같이 두루해야 한다는 말로 통문을 발하였다. 그러나 결단코 옮기거나 바꾸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뜻으로 대략 답을 하여 돌려보냈다.

이미지

원문

玉院事實
相巡。趙參判康夏。
本尹。金參判元性。
▣▣本院新儒之變。由來漸矣。前後顚末備載彼時日錄。而自己未以後。數十年餘牽補以過。保得靜謐矣。不幸數年來。先生庶裔之居覺里進士在榦。敢生狀分悖理之心以生事。本院之說傳播流聞而事甚無據。聽之泄矣。七月十四日都色告目內。杜洞韓掌議有鍾來到院中。曰鄕儒次第追到云云。曾所流播之說。必是作鬧之漸。齋任能任上院。
十五日晴。
香謁。彼輩所謂鄕儒六七人。乃發通任同周旋之說。以斷不容移易之意。略有酬答而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