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용 |
2일 맑음
관아에서 내려온 첩문과 저 무리들이 감영에 올린 탄원서에 대한 답장[狀題], 그리고 關文이 도착했다. 일제히 종가의 집[宗堂 무첨당]에 모여서 서로 돌려보고는 몹시 놀랐다. 대개 관문에 적힌 아주 엄하게 이끌어 깨우쳐주려는 뜻은 저들의 수중에서 끄집어낸 것과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在榦이 봄 무렵에 서울에 가고, 감영의 裨將과 고을 수령의 비서[冊房] 사이에서 어떤 농간을 부려 금일의 재앙을 이룬 것은 더욱 가증스럽다. 저들의 탄원서는 얻어 보지 못했다.
탄원서에 대한 답장[狀題] ; 답답함을 상소하고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였으니, 조정에서도 한바탕 고심해서 이리저리 생각해보았다. 사람을 쓸 때에는 피차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유독 書院과 祠宇에서만 고집해서 또한 깨닫지 못하니, 임금의 명령에 답하여 그 뜻을 널리 백성에게 알리고 웃어른의 생각을 받들어 잇는 뜻이 심히 그릇되었다. 관청에서부터 서원의 선비들에게 별도로 타이르노라. 즉시 허통하게 하여 인재를 등용하고 기르는 교화에 다함께 푹 젖어서 이에 선현의 가르침을 읊조리는 덕이 또한 족히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할 일이다.
경주부에서 내리는 첩문: 경주 부윤이 상고한 일인즉 순영에서 붙여온 甘結에 옥산서원의 薦錄에 대한 시비가 지금까지 끊이지 않아 이제 몇 백 년이라고 하니, 어찌 탄식을 이기겠는가? 대개 소통이라는 한 조목은 前後 여러 대의 임금들께서 公布한 것으로, 매우 엄할 뿐만 아니라, 하물며 다시 나라의 제도를 一新하려 하는데 있어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인재를 쓰는데 모남이 없으니, 내직으로는 顯官에 청하고, 외직으로는 兵使의 직을 주어 허통해서 씀에 장애가 없으니 자손에게 물려줌이 풍성하도다. 그런데 어찌 유독 향교와 서원의 임원만이 (인재를 씀에) 막고 제한함이 있으며, 또한 이 서원에서만 더욱 다름이 있는 것인가?
서원을 창설한 것도 이 사람들이며, (회재선생의) 후예인 것도 이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당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그 향례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니, 이 사람들에게 품은 분노와 쌓인 답답함이 그 얼마이겠는가? 옛 것을 위무하고 지금의 것에 은혜롭게 한다면, 어찌 이런 것이 있겠는가? (허통하지 않는 것은) 진실로 선현에 제향하고 즐겨 인재를 기르는 뜻이 아니니, 영남에 들어오기 이전에 일찍이 듣고서 개탄을 하였다. 이제 많은 선비들이 탄원을 품고 와서 호소하니, 눈을 닫고 잘못을 답습하는 것은 더욱 부당하다. 이에 甘結을 발송하노니, 도착하는 즉시 서원의 유생들에게 깨달아 알아듣도록 타일러 감히 강당에서의 모임을 방해하고 장난질 치거나 서원의 임원직을 끈덕지게 막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약 혹시라도 이전의 습속을 다시 밟아 소란을 일으키고 못된 행실을 부리면, 경주부로부터 지명하여 論報하면, 크게 징계하는 것이 마땅할 일이다.
경주부에 들어갔던 두 사람이 황혼 무렵에 나타나서 관청의 대체적인 것을 보니, 관청에서는 담당할 뜻이 없고 오로지 사후에 감영에다가 맡길 것이라고 하였다. 가히 탄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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