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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Y09+KSM-WM.1883.4713-20170630.Y1750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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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4년 2월 14일 / 高宗 21 / 甲申
날 씨 맑았다가 비가 옴
내 용

14일 맑았다가 비가 옴
都色에게 牌旨를 내려 곧 沙谷에 있는 進士宅에 보였다. 내려진 패지의 말[牌辭]은 곧 이러했다. 일의 면모가 부득불 그러하다. 사림에서 말하기를 享禮를 빠뜨린 후이니 香禮에서의 拜謁 여부를 어찌 말할 겨를이 있겠는가? 며칠을 기다렸다가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간 후에 여러 사람과 의론할 수 있을 것이다. 서원의 변고가 이미 이런 극단적인 지경에 이르렀으니, 首魁가 되는 牛角里玉山 良洞 두 마을은 예전과 같이 일족으로 베풀 수 없다. 마땅히 지금부터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 이에 옥산에서 잇따라 서명하고, 패지에 근거하여 우각리와 먼저 관계를 끊는다고 溪亭에서 편지를 썼다.
불순한 날씨에 어떻게 지내는가? 서원의 일이 이와 같아 겨를이 없었네. 진실로 여러 사람이 헤아려 일찍 결정한 것을 알기에 이미 생각해 보았으나, 혹시라도 마음에 조금이라도 근심스럽고 편하지 못한 것이 없었는지? 우리는 연일 참으로 사사롭게 근심하여 탄식한 것이 없지 않았으나, 여러분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그들과 다름이 있기는 하였으나, 이제는 미칠 수가 없게 되었네. 불초하고 나약하고 용렬하여 300년 동안 이어온 선조의 서원을 받들어 호위할 수 없게 되었네. 그리고 여러분들께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맡겨야하게 되었네. 그 눈을 어지럽히는 한두 사람이 나타난 후 70년 동안 넘보아오며 얻지 못한 땅을 앉아서 빼앗겨버렸네. 여러분에게는 진실로 선배들의 공로보다 많다네. 돌아보면 여러분이 좋아서 함께 뜻을 같이하고 이름을 같이하여 섰었네. 사람을 세워 받들고 지키며, 뒤섞여 같이하였네. 하나의 냇가 돌이나 한 그루의 나무도 훼손함이 있지 않았고, 부수어 못쓰게 하지 않았네. 그리하여 潛溪公[晦齋의 庶子인 李全仁]께서 하신 고심과 참된 마음의 정성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였네.
진실로 이와 같지 않으면 지금 이후에 친척으로 부끄러워 볼 낯이 없고, 사당에 들어가도 할 말이 없게 되네. 서원에 대해 말하면 오히려 한마디 말이 있고, 규정을 받드는 사람이 세상에 진실로 많지만 여러분과 같은 사람은 없었네. 또한 여러분으로 허물을 본받게 된다면, 또한 마땅히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러 바야흐로 생각하건대, 우리가 옛 규약을 굳게 지켜 간직하려 한다네. 그런데 거듭 개탄스럽고 애석하게도 조상을 같이하는 처지이면서 조상의 서원을 폄훼하고 해치는 자는 일족으로서의 정분을 베풀 수 없네. 이로부터 이별을 청하며 우각리와 관계를 끊는다는 패지는 너의 상전댁이 전후에 잘못인 줄 알면서도 저지른 과실[做錯] 때문이니, 마땅히 한번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이다. 오늘과 같은데 이르지 않았다면 오히려 일가의 의리로 부모님[重庭]을 회고하며 애석해했을 것이다. 아마도 혹시 갈 길을 잃었다가 잘못을 고쳐 선하게 된 후에는 도리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갈수록 더욱 비뚤어지고, 놓아둘수록 더욱 패악스러워 이번에 무리를 모아 무뢰하게 웃통을 벗고 소리치며 두 번이나 향례를 거행하는 곳을 빼앗아 점거하였다. 이에 溪亭이 한 것이 없다.
서원이 건립된 300년 동안 만약 이와 같은 일이 있은 후라면 이들 중에 관계를 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중으로 하여금 관계를 끊어 마지않게 한다. 이후에는 스스로 관계를 끊을 것이며, 영영 서로 단절하여 일족으로서 함께 말을 하고 왕래하기를 좋아하는 일족으로서의 정의를 회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로써 고할 것이다.

원문


十四日或晴或雨。
下牌于都色處卽見沙谷進士宅汝矣。處下牌辭。則事面不得不然。而以士林言之。享禮旣闕之後。香謁與否。更何暇言也。以待日後。正歸之地爲可。僉議以爲院變。旣至此極。作魁之角玉兩里。不可如前敍族。當從今絶之。乃聯書于玉。據牌於角。先絶溪亭書。寒喧。不暇書院事如此。固知僉筭之夙定。而旣而思。惟無或有一分惕蹴不安於心者乎。鄙等連日實不無私與憂歎者。以爲僉尊之與他有異也。今無及矣於等。不肖孱劣。不能保守三百年尊衛祖院。而僉尊則一朝焉而一任其一二人眩幻出後。坐奪了七十年覦覬不得地。於僉尊固多于前功矣。顧僉尊好與夫同志同名之立。立人奉而守之。混而同之。一泉石一樹木而無有毁傷。無有墜廢。以無負先潛溪公之苦心血誠。諒不如是也今而後。族等無顔入廟。無喙說院。而猶有一言奉規者。世上固多。不如僉尊人。又僉尊而效尤之。則僉尊又當。何以應之。到此地方思鄙等牢守古規之有以也。慨惜慨惜。同祖地而貶損祖院者。不可以敍以族誼。從此請辭絶角里牌。汝矣上典宅前後做錯當有一番此擧。不至今日。而猶是一家之義重庭回顧惜。庶幾其或迷轍改轅善後有道。而愈往而愈狃。愈肆而愈悖至於今番聚黨。無賴袒號絶貳奪據禮享。乃爲溪亭之所無爲。於建院來三百年。如此然後。非此中絶之。使此中而不絶不已也。此後段從其自絶。而永永相絶。不復以族誼同言好有往來。以此告悉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