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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Y09+KSM-WM.1883.4713-20170630.Y1750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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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3년 11월 25일 / 高宗 20 / 癸未
날 씨 맑음
내 용

25일 맑음
감영으로 갔다 돌아온 심부름꾼이 회답하는 題辭[回題]와 關旨를 보여주며 전했다. 감영에 올린 호소문의 초본은 다음과 같다.
삼가 생각건대, 일전에 한 道의 儒者[縫掖]가 본 고을 옥산서원의 일로 감영에 일제히 모여 두 차례의 제음의 교시[題敎]를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따뜻한 情과 타일러 깨우쳐줌이 화기롭고 온화하여 입안에 가시를 대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희는 삼가 두 번 세 번을 읽고, 감격하여 기쁜 마음이 이미 저 大人과 君子의 마음을 씀이 자세하고 소상하며 일의 처리함이 정밀하고 상세함이 이와 같음을 엿보았습니다. 그리고 도리를 호위하고 선비를 바로잡는 두 가지에 빠트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제음이 한 번 내려지면, 비록 저들이 깨닫지 못하며 어긋나고 시끄러운 무리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거두어 물러나고 부끄러워 단속할 겨를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알 것이니, 이제 시끄럽고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가지런히 변하여 모든 것이 새롭게 됨을 알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望香禮를 지내는데 저들 중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李鍾壽라는 자가 한 번도 기가 죽지 않고 지난번 요량으로 본 서원의 임원보다 먼저 와서 서원 가운데 앉았습니다. 그리고 향례가 거행될 즈음에 본 서원의 임원이 재계할 옷을 입으면 저도 역시 재계할 신발을 나누어 차지하고 "같은 任司가 된다."라고 하며 당당히 같이 들어가 향례를 행할 뿐이니, 재계를 하는데 저기서 한 번, 여기서 한 번하는 것이 되게 되었습니다. 지금 만약 향례를 뒤로 미루면, 우리가 서로 바꾸어가며 돕게 된다는 소리를 듣게 되니, 우리는 마땅히 신발을 벗어야 차림을 온전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감영의 제음으로 품평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감영의 제음에 별도로 달래고 두렵게 할 만한 것이 없게 보였습니다. 앞서하면 特差로 유독 제음만이 아니겠지만, 뒤에 하면 勅諭도 특별히 제음이 되겠습니까? 앞서하면 중요한 근거가 되겠지만, 뒤에 하면 그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희는 이에 온건한 말로 온갖 복잡한 것을 물리치고, 모두 깨우치게 하려고 극진히 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우치게 타이를수록 더욱 습속에 집착할 것이기에 곧장 뭐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죄수는 곤장을 치면 이전의 소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제음의 뜻이 어떠하여야 귀결됨이 어떠할 것이며, 환수함이 어떤 것이어야 부끄러워 그치게 함이 어떤 것일 것입니다. 보는 것이 제음을 마치 냉소하는 것 같고, 감추는 것이 마치 마음에 둔 것 같이하여 믿는 자는 또한 향신 가운데 한두 사람이며, 그 뒤를 쫓는 자는 따라가며 화답하여 마침내 돌입하여 향례를 차지한 것입니다. 우리 監營과 府의 앞뒤에 저들을 기다리는 사람은 선비의 관을 썼다는 명성을 지녔는데 어찌 선비의 명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체면의 처지에서 공론에도 따르지 않고, 감영의 제음에도 따르지 않으면서 이런 막되고 괴악한 습속을 지녔는가라고 말합니다.
저희는 이미 함께 교섭할 수도 없고, 또한 함께 거스르며 다툴 수도 없어 부득이하게 서원의 문을 닫고 작별하여 돌아가야 합니다. 한탄스럽고도 또한 애통합니다. 300년 동안 저희에게는 의지하여 돌아가 이르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돌아갈 곳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저희들의 태어남이 불행한데 이미 더할 말이 없으니 그 또한 불행이며, 합하께서 백성들을 보살피는 날에 변고가 일어났으니 또한 불행입니다. 그런데 합하께서 조사하여 내리신 제음의 정본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저희는 즉시 벌어진 일의 상태를 본관 성주에게 급히 달려가 알렸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성주께서 화재를 당하여 제음을 취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삼가 이렇게 모두가 연명하여 호소문을 올리니, 대수롭지 않은데도 지극히 급박하게 행동함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제음 ; 도회의 유생들에게 이미 상황을 글로 썼다고 할 것이다.

원문


二十五日晴。
營行回使見傳回題與關旨。呈營狀草。伏以向者一省縫掖。以本鄕玉山院事。而齊會營下。得蒙兩度題敎。溫情諭曉藹然。以口舌對荊楚。生等伏讀再三。感訟旣悅。有以覷見。夫大人君子。用心委曲。處事精詳。有如是矣。而衛道正士之兩。無遺闕也。意謂此題一下。則雖彼沒覺繆嘵之輩。必當知所以歛退愧戢之不暇矣。今可以訊掃鬧塵。整遫維新矣。今又望香。而彼中冒羞之李鍾壽者。了無一着低下於前時意想。先本任而來坐院中。至於香禮將行。而本任攝着齋衣。則彼亦分據齋靴。曰同爲任司。則當同入行香耳。齋其當一彼一此。今若後香。聽吾迭相。則吾當脫靴以全具矣。今曰營題題。而營題見其別無可怵而恐之者。前之特差。獨非營題。而後之勅諭。特爲營題乎。前則藉重。而後不止戢。生等於是乎穩言斥十複該警。靡不用其極。而愈警諭而愈狃習。直不曰曰。囚曰笞前漫不有。題意之爲如何。歸結之爲如何。還收之爲何者。愧戢之爲何者。視若冷題。隱若有中。有所恃者。又鄕新之一二。逐次者從而唱和之。竟至突入擅香。於惟我營府之前後。待彼者謂以有冠儒之名。而安有儒名而於此體貌之地。不有公議。不有營題。而有此駭悖之習乎。生等旣不可以與同周旋。又不可以與之乖爭。不得已閉辭院門而歸。噫且慟矣。三百年依歸之所至于生等。而一朝焉而無所於歸。生等之生丁不幸。已無加言而其亦不幸。而變起於閤下按節之日而又不幸。而不見正於閤下勘題之下也。生等卽以事狀馳報于本官城主。而適會政軒灾火不遑題錄。故謹此百聯以呈。無任屑越迫蹙之至。題。已題於道儒之狀向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