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용 |
6일 날씨가 맑았으나 추웠음
도회의 자리가 布政司[감사가 집무하던 관청] 밖에 개설되어 힘써 논의하여 호소문을 올렸다. 曺司는 法興 李庭鐸, 河回 柳東運, 道洞 安鐘瑞이고, 公事員은 李中五, 張來遠, 李相翊, 鄭鎭國이고, 권역에서 희망하는 狀頭는 安東의 幼學 金曄洛과 金曄倚, 星州의 幼學 鄭大錫, 昌寧의 進士 金奎華 등이었다. 감영의 아전을 불러내어 호소문을 품고 들어가 올리려는 뜻을 아뢰게 하였다. 그러니 감기에 걸려 의관을 벗고 있어 많은 선비를 만나기 어렵고, 또한 얼굴을 맞대고 호소문을 올리는 것은 필요치 않다고 답해 왔다. (그래서) 마지못해 감영의 어전에게 호소문을 부탁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니, 해가 이미 저물었다. 저녁식사 후에 題音이 내려졌다. 호소문의 草稿은 다음과 같다.
삼가 생각건대, 저희는 영남이 한결같이 나라 사람들에게서 유학의 고장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우리 晦齋와 退溪 두 선생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경주 옥산서원은 바로 晦齋 선생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우리 유학계에서 받들어 지키고, 많은 선비들이 찾아 의지하는 것이 그 시설과 규모에 있어 太學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다 선비를 추천하는 절차와 조목[節目]은 곧 퇴계 선생께서 강안으로 정해놓은 규약입니다. 鐵券으로 만들어 교체하지 않고 받들어 지켜온 것이 지금까지 300여 년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근세 이래로 남기신 유풍에서 점점 멀어지고, 선비의 풍속이 한꺼번에 변하여 고요하고 편안히 제사를 모시던 곳이 창과 방패가 서로 맞서고, 젊은 선비들이 예의를 시행하던 곳이 주먹과 발길질을 서로 더하게 되니, 금일의 변고에 이르러 극단적이 되었습니다. 이 일이 윗사람들께 알려져 감사께서 여러 번 번거롭게 題音으로 교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들은 다시 반드시 일일이 신경쓰려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온 도에서 죽음으로 지켜 변치 않게 하려는 것은 오직 우리 문원공의 서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받들어 지켜온 것은 우리 문순공께서 강안에 써놓은 12 글자의 절목에서 "중인과 서인은 허락하지 말라.[中庶勿許]"고 한 것을 참고하여 임원을 선출하는 것을 준수하여 행해온 것이 300년입니다. 그리고 儒案은 바로 우리 두 선생이시니, 末學이자 後生 가운데 누가 감히 그 사이를 자기 마음대로 넓히거나 좁힐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아, 저 망측한 변고가 바로 선생의 후손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성내며 욕하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무시하고 빼앗아 향례를 빠트린 것이 이미 세 차례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덮어버리고 태연히 있는 것이 한 가지 예입니다. 그리고 또한 저들 중에 한 무리의 고을 선비들이 틈을 타 날뛴 것이 또한 변괴가 변괴를 낳은 것입니다. 그들은 무리를 불러 모아 서원의 문을 막고, 위협하여 음식물을 준비하여 제공하려는 것을 끊으니,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피차가 서로 등지고 있는 처지에 비록 후손으로 지나침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어찌 선비의 관을 쓰고 선비의 옷을 입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리하여 본 고을의 儒生인 우리들은 글을 써서 온 道에 事變을 두루 고하였습니다. 이것이 저희가 감영에 모인 까닭입니다.
삼가 합하께서 본손들의 호소문에 제음으로 교시한 것을 보면, "진실로 이러한 일이 있으면, 선비로서 대접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조사하여 보고한 것 중에 저들 편의 진술서에 "비록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과연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저들 편을 따라 스스로 한탄함이 이와 같으니, 합하께서 한번 징계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유교의 교화를 돈독하게 함이 있을 것이며, 선비들의 기풍을 바르게 함이 또한 이것으로부터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감히 한목소리로 우러러 호소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합하께서 세세히 살펴주십시오. 영남의 여러 서원들이 향례 시에 집사를 한번도 저들의 편에 허통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저희들이 분명히 알고 정확히 보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본 서원에서는 한두 자리를 저들에게 허통한 것은 진실로 정조 때에 별도로 나누어준 교시를 받든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자리, 그리고 또 두 자리를 저들의 편에 나누어주었습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저들을 우대하여 들어오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오히려 부족하여 또 모욕하며 빼앗으려는 계략을 일으키고, 서원의 규약을 무너뜨리려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어긋남은 쑥대가 무성한 玉山 한 골짜기뿐만 아니라, 온 영남 70 고을의 일입니다. 앞으로 바람이 휩쓸고 물결이 몰아치면 한 이랑밖에 되지 않는 서원은 安靜된 곳이 없어 많은 선비들이 의지하여 돌아갈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니 오늘의 옥산은 바로 저희들의 서원이고, 오늘의 저희는 바로 경주의 선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유독 경주의 선비들만이 한 번 청원서를 올리고 두 번 청원서를 올려 호소하는데 그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합하께서는 선현을 받들어 호위하고 元氣를 부지하셔서 우리 옥산의 선생 묘소가 가시밭이나 쑥대밭이 되는 근심을 면하게 해주시고, 퇴계 선생이 만드신 규약을 영원토록 읊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제사를 지내는 일이 경사스럽게 되기를 천번 만번 기도를 드립니다.
題音 ; 당초의 일에 대한 제음이며 甘結은 곧 답답한 마음을 풀어헤치려는 데서 나오기는 하였으나, 사건의 결정을 여러 의견에서 구해서 한 것으로 어느 편에 매인 데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사로움을 이겨낸 것이다. 그러하니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느냐, 사건의 결정을 여러 의견에서 구할 것인가는 또한 서원의 선비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어느 한쪽 편이 되는 자는 진실로 마땅히 공의의 진퇴가 어떠한지를 기다려야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이미 수치심을 무릅쓴다고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미 선비의 관을 쓰고 詩를 논하는 자가 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수치심을 끼치고 비웃음을 초래한 단서가 되는 것이 서원의 선비에게 있으니, 경중을 다리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향례를 빠트리는데 이르러서는 어찌 송구함을 이길 수 있겠는가. 고을의 보고를 바탕으로 이미 엄히 타일러 경계하도록 한 것이 있다. 또한 전후의 제음을 거두어들였으니, 그 사람은 또한 마땅히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스스로 단속할 것이다. 고을의 많은 선비들이 글을 읽는 곳이니, 또한 시끄럽고 요란하게 할 염려가 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감영에서 말씀하신 뜻 가운데 "수치심을 무릅쓴다고 스스로 일컫는다[冒羞自稱]"는 이 네 글자는 비록 저들의 이른바 유사라는 자를 서둘러 물리치기는 하나 결국에는 유야무야하여 엄히 단속하여 영원히 막을 뜻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선비들이 한목소리로 간절히 호소한 뜻이겠는가? 그래서 자리를 함께하여 심의하니, 다시 호소문을 올리자는 의견이 빗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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