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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Y09+KSM-WM.1883.4713-20170630.Y1750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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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3년 8월 28일 / 高宗 20 / 癸未
날 씨 맑음
내 용

28일 맑음
감영에 갔던 심부름꾼을 돌려보내면서 민원서에 대한 제음을 보내왔다. 하는 말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매우 한쪽 편을 들려는 뜻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하여 일정한 것이 없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탄식하였다. 감영에 드린 민원서의 말은 다음과 같다.
삼가 생각건대, 지금 저희는 또한 탄원서를 끌어안고 울부짖지 않을 수 없으며, 탄원서에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앞서의 탄원서가 바로 지금의 탄원서이니, 앞서의 제음은 필시 지금의 제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을 수 없지만, 두려움이 없는 것은 저 제음에 대해 삼가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천하에 어찌 누가 옳은지 분간되지 않는 두 가지 옳은 것이 있겠습니까? 옳은 것이 그 그릇된 바이고, 그릇된 것이 그 옳은 바이겠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마음을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진다."고 하였고, 또 말씀하시기를 "간사한 말에서는 도리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알고, 억지로 꾸며서 하는 말에서는 도리가 얼마나 궁한지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합하께서는 양측의 말을 들으시고 어느 편이 간사하며, 어느 편이 꾸며내며, 어느 편이 그릇되며, 어느 편이 옳다고 여기십니까? 저들의 탄원서에 대한 제음의 敎示는 關文의 帖紙가 도착하기 전에 저희는 이미 저들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저들 중에는 슬그머니 위협하려고 날마다 외우기를 거듭합니다. 감영의 제음이 이와 같으니, 오히려 다시 저지하겠다며 위협합니다.
한편으로 솟구쳐 오르는 마음이 이전보다 배가 되며, 다른 한편으로 저들의 말에 옳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감영의 제음을 이행하지 않으면, 조정의 명을 봉행하지 않는 자이며, 국법을 어지럽히는 백성이며, 역적이라며 날마다 욕설을 내뱉습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더욱 거칠게 대하며, 빙 둘러싸고는 붙잡아 때리지만 겨우 주먹질과 발길질을 막을 뿐이니, 이름과 그 실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풍파 가운데서도 다행히 우리 합하께서 내려주신 제음의 교시를 믿고 향례를 겨우 지내려 하지만 안심하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 이름은 선비가 되나 그 다툼이 이와 같으니, 그들과 분별하고자 하는 저희가 진실로 그릇된 것입니까? 서원에 대한 사실의 전말을 저희가 앞서 이미 얼굴을 대하고 이러이러하다고 진술하였으며, 탄원서에서 그것을 누누이 아뢰었습니다. 합하가 말씀하신 교시도 이미 있으며, 하달하신 題辭 또한 있습니다. 그런데 합하의 마음 쓰심은 어찌 흰 것과 검은 것을 먼저 두시지 않으시어 어리석은 저희에게 번잡함을 더하시는지요? 진실로 크게 함께하는 것으로 융합하게 하시고, 소외되어 울분을 품은 자를 화합하여 빛나게 하신다면, 모두가 세상에 응하여 다스림에 힘쓰는 방편이 될 것이니, 그 또한 크고 훌륭한 德의 일이 될 것입니다.
합하께서 그치라고 하시면, 그치는 것이 마땅하나, 합하께서 그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합하께서 옳지 않다고 하시면 옳지 않은 것이나,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융합하게 하시고자하나 도리어 심히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며, 소외되어 울분을 품은 자를 (화합하여 빛나게) 하고자 하나 도리어 막고 억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비로 하여금 되풀이하게 하여 헤아려 알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격언에서 말하기를 "저울추를 매다는 것은 모두가 생명을 담당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합하께서는 시비로 생명을 담당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들의 제음 가운데 강의에 추천하는 규약이 행해지지 않은 지 오래되며, 과거에 합격한 것이 강의의 추천에 어찌 조건을 바르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합하께서 하신 말씀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저희는 또한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강의에 추천하는 규약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누가 그렇게 한 것이겠습니까? 강의에 추천하는데 과거에 합격한 것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고, 강의에 추천하는 자는 禮를 배워 강의할 수 있어 이에 근거해서 시의 적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으로 말씀을 드리면 참고하는 것이 부족한 자는 원래 거론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老先生께서 만드신 추천하는 규약 가운데 선발에 참조하는 한 가지 사례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희들 또한 그것을 金科玉條라고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들어 일이 잘 되도록 변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론 강의를 말하고,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서원을 건립한 이래로 3백 년 동안 따라 행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바뀌기를 기대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합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마땅치 못하다고 여깁니다. 조정에서는 벼슬과 녹봉을 장악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 사람을 귀하고 드러나게 합니다. 그런데 선비는 무엇을 장악하겠습니까? 오직 명분만이 숭상하는 것입니다. 명분을 숭상하기에 비록 저쪽이 이기고 이쪽이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이쪽의 그렇지 못함을 저쪽과 같이 여기니, 진실로 선비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쪽이 이기고 저쪽이 그렇지 못한데 반드시 하나로 같게 하게 시키려 하신다면, 그 선비 되는 자가 누구든 그것을 행하고자 하겠습니까. 조정에서는 소외되어 울분을 품은 자를 이런 성대한 법의 아름다운 뜻으로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성대한 법이라는 것이 저쪽의 울분을 품고 소외된 자들에게만 유독 어찌 혜택을 입게 하고, 이쪽의 아뢰려 하는데 억눌린 자들에게만 유독 어찌 원통하게 하시는지요?
선비가 굳게 닫혀 있는 것은 선비의 병입니다. 구구하게 평소의 흐름을 말한 것은 한쪽에서 헛된 기물을 품게 되면 용납해서 부흥하게 하는데 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禮에서 이르기를, 풍속의 됨됨이를 살펴 알지 못하면 반드시 그 땅을 관찰할 것이며, 풍속이 문란하게 됨을 알지 못하면 반드시 그 죄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옥으로 된 술잔에 가득 채워 마시다가도 한번 실수하면 기쁨이 바뀌어 노여움이 되고, 어린아이의 닭이라도 시장과 들판이 일정하면 본받으며 나란히 팔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물에는 명분이라는 것이 있지 않아도 다투는 자는 누구에게나 명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분에 일정하지 않은 것이 있더라도, 지키려는 자는 누구에게나 일정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합하의 敎示에서, 먼저 溪亭의 門中에서부터 특별히 가려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합하의 뜻하시는 것을 저희 또한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아, 이 세상에 쓰일 대군자의 왕성한 德과 지극한 뜻이 그 두루 통달함을 완성하여 한 가지도 획득하지 않음이 없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화기롭고 온화하게도 말씀하신 임금의 뜻 사이에는 전대 임금께서 전하시는 가르침을 또한 두지 않으셨습니까? 향을 받들고 화로를 받드는데 특별히 가려내고, 陳設하는 것을 또한 가려내겠습니다. 그러나 합하께서 가려내고자 하시는 것이 하필이면 행하지 못할 자를 가려내어 행하게 하십니까? 그렇게 하면 다툼을 멈추게 하려하나 기약하지 못하며, 다툼을 조장하는 것이옵니까? 또 소외된 자들과 차차로 통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반도 읽지 못하고 심장이 싸늘해지고 간담이 떨어지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溪亭은 오히려 혹시라도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溪亭에 부속되는 것에 이르도록 溪亭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溪亭이라야 한다는 것입니까? 또한 동향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溪亭에 관계된 사람은 모두 溪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요? 新儒로서 명분을 삼으면 溪亭과 통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지난 해 규정[事目] 가운데 또한 등급의 제한을 둔 것이 과연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합하께서 한번 제음을 내리시면 저 孫星煥, 辛宗海, 韓有宗 등의 무리가 번번이 우두머리가 되어 무리들을 불러 모아 공갈함에 이르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저희는 그들의 저지를 받으면 서원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이미 그것을 알기에 관청에서 반드시 저지하지 못하게 하고, 감영에서 반드시 저지하지 못하게 한다면, 감영과 관가 아래에 어찌 한 丈夫가 있어 문에 서겠습니까? 그 형세가 장차 저들 스스로 장과 부장을 맡을 것이며, 저들 스스로 향례의 축문을 읽을 것이니, 저희가 특별히 가려낼 필요가 없습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저희는 받은 바가 있어 지금 저희의 사사로움으로 주고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마을과 이웃에 두루 고하고, 道內에도 두루 고해야 합니다. 합하로부터 빼앗겨 나누어준 것이 혹시라도 저희를 위한 것이 된다면, 아마도 저세상에 가는 날 先師와 先父에게 말이 있어 저희는 선생의 서원에 대해 전일에 합하께서 바라던 것을 자세하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가만히 탄식컨대, 처음부터 끝까지 보존하여 둘 수는 없는지요?
제음 ; 전후의 題音과 關文을 꿰뚫어 보건대, 城府에는 남은 온정이 있지 않으며, 또는 이것은 결정을 미루는 것이니, 진실로 공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하니 감영 또한 그것을 처리하는 방도가 있을 것이니, 진실로 스스로 반성한다면 아마도 만 가지 중에 한 가지 정도로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다.

원문


二十八日晴。
營伻見還而狀題。不惟不摸糊說去。煞有右袒底意。人心之反覆無定。一至此哉。良覺咄歎。呈營狀辭。
伏以今玆生等。又不得不抱狀明籲。而狀無有加之辭焉。前狀卽今狀。則前題必今題矣。而又不能以是而恃。無恐者彼題而窃感焉。天下寧有兩是之不分誰是。而是其所非。而非其所是者哉。孟子曰。 是非之心。人皆有之。又曰。邪辭知其所離。遁辭知其所窮。閤下兩聽之。誰邪誰遁。誰非誰是也。彼狀題敎。到付關帖前。而生等固已聞知於彼人矣。自彼中窃窃然剽喝。日誦而增。營題如是。猶復沮格之。恐之脅之。一倍升騰。一有不可於渠言。則日營題不行。朝令不奉者。亂民也。逆賊也。衝口醜詆。不揀齒髮少年勁悖。環而圍之。扼之毆之。僅塞拳踢。名而其實有浮焉。如此風波之中。幸賴我閤下題敎。享禮僅得享過。而不可以安言矣。噫名爲儒也。而其爭也如是。而求與之辦者。生等固其非矣。院事顚末。生等前者。固已面陳之這這矣。狀白之縷縷矣。閤下言敎之旣有矣。題下之亦有矣。閤下心下。豈不白黑之先置。而以待愚生之煩複者哉。誠以大同融混。疏鬱和光。爲一切酬世方便治務也。其亦盛德事矣。
而閤下曰止則止者也。而閤下以不止之。閤下曰不可則不可者也。而閤下以可之。是猶欲其融混。而反以激乖之。欲其疏鬱。而反以塞抑之。使是非環中。而無所端倪也。格言曰。懸之錘以一諸司命。今閤下其不爲是非之司命乎。彼題有曰。薦講不行久矣。入格叅薦未知何所正條云云。 閤下言下所歸。生等亦豈不知也。薦講不行。又誰之使然也。薦講之行。不得入格之代。以薦講者。以其學禮之有講。而據以爲時措權宜也。以入格言之。叅不足者。元不擧論。此亦老先生出於薦規中選叅一例也。生等亦非謂金科玉條而奉以周旋爲也。然勿論曰講曰格。建院來三百有年遵而行之者。期欲一朝焉而必破壞之者。生等窃以爲閤下之不宜其然也。朝廷以爵祿操爲柄。以貴顯人。而士也何操焉。惟名是尙焉。名之所尙。雖彼勝而此不如。不以此而同乎彼。固士之情也。况此勝而彼不如。而必欲使之一同之。則其爲士者。誰欲行之者哉。朝家之疏。鬱自是盛典之美意。而猶之盛典也。彼鬱而疏者。獨何惠之。此伸而抑者。獨何寃之。士之膠滯。士之病也。區區道素之流。抱空器於一方。閒界容興乎。禮云禮云。不知其爲觀風。必察之地。而亦不知爲傷風。必按之罪也。闐玉之爵而飮酬一失。則反喜爲怒。童子之鷄而市野一定。則化競爲沽。故曰物有不名。爭之者誰有哉。名有不定。守之者誰有哉。今閤下之敎。曰先從溪亭門中特差云云。閤下意下。生等亦豈不知耶。嗚乎此需世大君子盛德至意。欲其曲遂傍達之。無一不獲。而藹然於辭旨之間者也。聖考傳敎又不有之乎。所以奉香奉爐之特其差矣。判陳設之又其差之矣。閤下之又欲差之也。將以何之必欲使差之不行者而行之。則使之息爭而不幾乎。助之爭乎 又曰疏次次通云云。讀之未半。不覺心寒而膽墜矣。溪亭猶或有異。而至於附溪亭而欲溪亭者。皆可溪亭之乎。 又於自同鄕人之於溪亭者。皆可溪亭之乎。以新爲名而無人不通。則年前事目中。亦存階限。果安在哉。閤下一題。而噫彼孫星煥辛宗海韓有宗輩。番番作頭。嘯聚恐喝。無所不至。生等之被他守。不得賢院也。生等亦已知之矣。官家而必使之不守。營家而必使之不守。則營官之下。寧有一丈夫。立於門者哉。勢將自彼而長貳之。自彼而禮祝之。無用乎生等之特差矣。而雖然生等有所受之矣。今不可以自生等私以授與。當徧告鄕隣。徧告道內矣。自閤下奪而與之。猶或爲生等。籍有辭於先師先父歸白他日。而生等區區前日之望閤下於先生之院者。窃喟夫終始而不能保有也。
題前後題關洞見。城府無有餘蘊。又此持難。未必曰亶出於公心。則營亦有處之之道。苟能自反。則庶或有萬一之覺向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