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용 |
28일 맑음
감영에 갔던 심부름꾼을 돌려보내면서 민원서에 대한 제음을 보내왔다. 하는 말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매우 한쪽 편을 들려는 뜻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하여 일정한 것이 없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탄식하였다. 감영에 드린 민원서의 말은 다음과 같다.
삼가 생각건대, 지금 저희는 또한 탄원서를 끌어안고 울부짖지 않을 수 없으며, 탄원서에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앞서의 탄원서가 바로 지금의 탄원서이니, 앞서의 제음은 필시 지금의 제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을 수 없지만, 두려움이 없는 것은 저 제음에 대해 삼가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천하에 어찌 누가 옳은지 분간되지 않는 두 가지 옳은 것이 있겠습니까? 옳은 것이 그 그릇된 바이고, 그릇된 것이 그 옳은 바이겠습니까?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옳고 그름을 분간하는 마음을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진다."고 하였고, 또 말씀하시기를 "간사한 말에서는 도리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알고, 억지로 꾸며서 하는 말에서는 도리가 얼마나 궁한지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합하께서는 양측의 말을 들으시고 어느 편이 간사하며, 어느 편이 꾸며내며, 어느 편이 그릇되며, 어느 편이 옳다고 여기십니까? 저들의 탄원서에 대한 제음의 敎示는 關文의 帖紙가 도착하기 전에 저희는 이미 저들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저들 중에는 슬그머니 위협하려고 날마다 외우기를 거듭합니다. 감영의 제음이 이와 같으니, 오히려 다시 저지하겠다며 위협합니다.
한편으로 솟구쳐 오르는 마음이 이전보다 배가 되며, 다른 한편으로 저들의 말에 옳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감영의 제음을 이행하지 않으면, 조정의 명을 봉행하지 않는 자이며, 국법을 어지럽히는 백성이며, 역적이라며 날마다 욕설을 내뱉습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더욱 거칠게 대하며, 빙 둘러싸고는 붙잡아 때리지만 겨우 주먹질과 발길질을 막을 뿐이니, 이름과 그 실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풍파 가운데서도 다행히 우리 합하께서 내려주신 제음의 교시를 믿고 향례를 겨우 지내려 하지만 안심하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 이름은 선비가 되나 그 다툼이 이와 같으니, 그들과 분별하고자 하는 저희가 진실로 그릇된 것입니까? 서원에 대한 사실의 전말을 저희가 앞서 이미 얼굴을 대하고 이러이러하다고 진술하였으며, 탄원서에서 그것을 누누이 아뢰었습니다. 합하가 말씀하신 교시도 이미 있으며, 하달하신 題辭 또한 있습니다. 그런데 합하의 마음 쓰심은 어찌 흰 것과 검은 것을 먼저 두시지 않으시어 어리석은 저희에게 번잡함을 더하시는지요? 진실로 크게 함께하는 것으로 융합하게 하시고, 소외되어 울분을 품은 자를 화합하여 빛나게 하신다면, 모두가 세상에 응하여 다스림에 힘쓰는 방편이 될 것이니, 그 또한 크고 훌륭한 德의 일이 될 것입니다.
합하께서 그치라고 하시면, 그치는 것이 마땅하나, 합하께서 그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합하께서 옳지 않다고 하시면 옳지 않은 것이나,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융합하게 하시고자하나 도리어 심히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며, 소외되어 울분을 품은 자를 (화합하여 빛나게) 하고자 하나 도리어 막고 억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비로 하여금 되풀이하게 하여 헤아려 알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격언에서 말하기를 "저울추를 매다는 것은 모두가 생명을 담당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합하께서는 시비로 생명을 담당하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들의 제음 가운데 강의에 추천하는 규약이 행해지지 않은 지 오래되며, 과거에 합격한 것이 강의의 추천에 어찌 조건을 바르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합하께서 하신 말씀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저희는 또한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강의에 추천하는 규약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누가 그렇게 한 것이겠습니까? 강의에 추천하는데 과거에 합격한 것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고, 강의에 추천하는 자는 禮를 배워 강의할 수 있어 이에 근거해서 시의 적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합격하는 것으로 말씀을 드리면 참고하는 것이 부족한 자는 원래 거론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老先生께서 만드신 추천하는 규약 가운데 선발에 참조하는 한 가지 사례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희들 또한 그것을 金科玉條라고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들어 일이 잘 되도록 변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론 강의를 말하고,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서원을 건립한 이래로 3백 년 동안 따라 행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루아침에 바뀌기를 기대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합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마땅치 못하다고 여깁니다. 조정에서는 벼슬과 녹봉을 장악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 사람을 귀하고 드러나게 합니다. 그런데 선비는 무엇을 장악하겠습니까? 오직 명분만이 숭상하는 것입니다. 명분을 숭상하기에 비록 저쪽이 이기고 이쪽이 그렇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이쪽의 그렇지 못함을 저쪽과 같이 여기니, 진실로 선비의 심정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쪽이 이기고 저쪽이 그렇지 못한데 반드시 하나로 같게 하게 시키려 하신다면, 그 선비 되는 자가 누구든 그것을 행하고자 하겠습니까. 조정에서는 소외되어 울분을 품은 자를 이런 성대한 법의 아름다운 뜻으로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성대한 법이라는 것이 저쪽의 울분을 품고 소외된 자들에게만 유독 어찌 혜택을 입게 하고, 이쪽의 아뢰려 하는데 억눌린 자들에게만 유독 어찌 원통하게 하시는지요?
선비가 굳게 닫혀 있는 것은 선비의 병입니다. 구구하게 평소의 흐름을 말한 것은 한쪽에서 헛된 기물을 품게 되면 용납해서 부흥하게 하는데 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禮에서 이르기를, 풍속의 됨됨이를 살펴 알지 못하면 반드시 그 땅을 관찰할 것이며, 풍속이 문란하게 됨을 알지 못하면 반드시 그 죄를 생각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옥으로 된 술잔에 가득 채워 마시다가도 한번 실수하면 기쁨이 바뀌어 노여움이 되고, 어린아이의 닭이라도 시장과 들판이 일정하면 본받으며 나란히 팔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물에는 명분이라는 것이 있지 않아도 다투는 자는 누구에게나 명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명분에 일정하지 않은 것이 있더라도, 지키려는 자는 누구에게나 일정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합하의 敎示에서, 먼저 溪亭의 門中에서부터 특별히 가려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합하의 뜻하시는 것을 저희 또한 어찌 알지 못하겠습니까? 아, 이 세상에 쓰일 대군자의 왕성한 德과 지극한 뜻이 그 두루 통달함을 완성하여 한 가지도 획득하지 않음이 없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화기롭고 온화하게도 말씀하신 임금의 뜻 사이에는 전대 임금께서 전하시는 가르침을 또한 두지 않으셨습니까? 향을 받들고 화로를 받드는데 특별히 가려내고, 陳設하는 것을 또한 가려내겠습니다. 그러나 합하께서 가려내고자 하시는 것이 하필이면 행하지 못할 자를 가려내어 행하게 하십니까? 그렇게 하면 다툼을 멈추게 하려하나 기약하지 못하며, 다툼을 조장하는 것이옵니까? 또 소외된 자들과 차차로 통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반도 읽지 못하고 심장이 싸늘해지고 간담이 떨어지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溪亭은 오히려 혹시라도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溪亭에 부속되는 것에 이르도록 溪亭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溪亭이라야 한다는 것입니까? 또한 동향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溪亭에 관계된 사람은 모두 溪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요? 新儒로서 명분을 삼으면 溪亭과 통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지난 해 규정[事目] 가운데 또한 등급의 제한을 둔 것이 과연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합하께서 한번 제음을 내리시면 저 孫星煥, 辛宗海, 韓有宗 등의 무리가 번번이 우두머리가 되어 무리들을 불러 모아 공갈함에 이르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저희는 그들의 저지를 받으면 서원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이미 그것을 알기에 관청에서 반드시 저지하지 못하게 하고, 감영에서 반드시 저지하지 못하게 한다면, 감영과 관가 아래에 어찌 한 丈夫가 있어 문에 서겠습니까? 그 형세가 장차 저들 스스로 장과 부장을 맡을 것이며, 저들 스스로 향례의 축문을 읽을 것이니, 저희가 특별히 가려낼 필요가 없습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저희는 받은 바가 있어 지금 저희의 사사로움으로 주고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마을과 이웃에 두루 고하고, 道內에도 두루 고해야 합니다. 합하로부터 빼앗겨 나누어준 것이 혹시라도 저희를 위한 것이 된다면, 아마도 저세상에 가는 날 先師와 先父에게 말이 있어 저희는 선생의 서원에 대해 전일에 합하께서 바라던 것을 자세하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가만히 탄식컨대, 처음부터 끝까지 보존하여 둘 수는 없는지요?
제음 ; 전후의 題音과 關文을 꿰뚫어 보건대, 城府에는 남은 온정이 있지 않으며, 또는 이것은 결정을 미루는 것이니, 진실로 공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하니 감영 또한 그것을 처리하는 방도가 있을 것이니, 진실로 스스로 반성한다면 아마도 만 가지 중에 한 가지 정도로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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