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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Y09+KSM-WM.1883.4713-20170630.Y1750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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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83년 8월 5일 / 高宗 20 / 癸未
날 씨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남
내 용

5일, 비가 내려 물이 불어남
또 뒤따라 한 사람을 (감영으로) 보냈다. 떠난 지 오래되어 감영에서 내린 문보와 제음(題音)이 나왔다. 文報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가 생각건대 본 서원은 바로 우리들 선대의 스승이신 文元公 晦齋 선생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옛 규칙을 좇아 받들고 삼가 지켜서 잃지 않으려 한 것이 또한 300년이나 오래되었습니다. 앞선 여러 임금들께서 (선현을) 호위하는 법을 높이 받들어 예사로움을 벗어남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비록 다른 곳으로부터의 정황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에서 일어났으니 감영의 처결과 경주부의 敎示가 지시로서 엄히 타일러 경계하는 것뿐만 아니었습니다. 가까운 때라면 壬子年과 癸丑年 사이에 金府의 南府公이 별도로 타일을 결단한 것이 있은 후로는 분란이 조금 안정되었으나, 사소한 시비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름과 초하루의 향례에 祭享하는데 오르기를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지난달 보름날 향례를 치르는 자리에서 다시 허통하여 같이 주선해야 한다는 등의 말로 조금씩 틈을 엿보는 듯하였습니다. 만약 흔들림이 있으면, 아마도 간절히 청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300년 동안 서원의 규정 가운데 퇴계 선생께서 한번 정한 규정인 세 가지(父, 母, 妻邊)를 참고하는 규정이 있다는 것을 보이며 그것을 변통할 수 없고, 그것을 전용할 수 없다는 뜻을 간절하게 설명하며 혹시라도 이해하여 깨우쳐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삼가 감영의 題音과 분부를 내린[行下] 帖文은 본래 여러 가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에서 나와서 놀랍고 두려우며 떨려서 땀이 흐르니, 진실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감영에서 들은 것이 어느 곳인지를 알지 못하며, 드나들며 현혹한 것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편향되게 들은 것이기에 피상적인 하소연에 빠질 염려가 있으니, 사당에 오르지 못하고 제향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여러 가지 근거 없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원래 향례 때에는 수석 집사 한두 직책을 제외하고는 일찍이 같이 두루 하지 않는 것이 없었습니다. 평소의 모임에서는 간혹 향례도 하고 간혹 회합을 가지기도 하는데 오는데 따라 대접하는데 따라 차별이 있지 않았습니다. 서원의 창건에 있어서는 조정의 도움도 있었고, 관찰사의 도움도 있었고, 고을 수령의 도움도 있었고, 고을과 도내 사림의 도움도 있었으니, 서원에 갈무리되어 있는 考往錄에서 분명하게 상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속인 것이라고 한다면, 어느 것이 속이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조정의 명령으로 말씀드리면 癸未年의 규정[事目]에 단지 벼슬길에만 미치고 서원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壬子年에 여러 신하들이 임금의 앞에서 아뢴 계책 가운데 임금께서 가하다고 한 것[榻前定奪]에 따르면 단지 서원에 대해서는 서손들에게 사당 내의 한 직책을 별도로 부여한다고 하였으니, 한 직책을 부여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임금의 교시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후손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행히 우리 성주 합하께서 首席이라는 존위에 계시니 (선현을) 잘 호위하는 도리가 번져나가 많은 선비들의 마음에 옮겨가지 않겠습니까? 이에 감히 모두들 모여 우러러 아뢰고 엎드려 간구하기를 실제에 근거해서 보고하오니, 옛 규정을 훼손하지 않고 선현의 서원을 보호하게 해주실 것이라 여깁니다.
(경주부의) 題音 ; 감영의 題音이 매우 엄하니, 오직 마땅히 받들어 행할 것이라.

원문


初五日雨漲。
又追送一員。邁久。於營下文報題音出來。文報草云云。
伏以本院。 卽我先師文元公晦齋李先生妥享之所也。遵奉古規。謹守勿失。且將三百年之久矣。前後列聖朝。崇將衛護之典。出尋常萬萬。雖有外間風色。起於不起。營題府敎。不啻嚴申以指。近時。則壬子癸丑間。金府南府公。別有勑斷後。波浪稍定。塵埃不撲。而望朔香煙。請以升享矣。不意前月望香之席。更以許通同周旋等說。微微窺覘有若掀。恐有若苦懇是去乙。民等以三百年院中故事。有退陶先生一定之規。三叅之之觀。移易他不得。轉注他不得底義。懇懇開陳。冀或曉悟。而今伏見營門題音行下帖。本出於萬萬所未窺慮之地。駭惶顫汗。亶不知何由致此也。營家聽聞。未知何處。出入眩惑。未知何人。而偏聽之地。恐涉膚受。至如不得升堂。而不得叅享云者。尤其萬萬無據之一也。原來享禮時。首執事一二窠外。未嘗不與同周旋矣。至於尋常聚集。則或香或會。而隨來隨接。不有間隔矣。至於書院刱建。則有朝家。有方伯。有州家。有鄕道士林。院藏往錄。班班可攷。是可誣也。孰不可誣也。且以朝令言之。癸未事目。只及於仕路。而不及於儒宮。壬子榻前定奪。只及於院傍。庶孫之別給廟內一窠。而一窠之給久矣。則聖敎之不爲不奉矣。後裔之不爲不念矣。幸我城主閤下。益在首席尊。漸勤護之道。不下於多士之心。玆敢齊會。仰禀伏乞。據實論報。以爲勿毁古規。俾保賢院事云云。
題營題。截嚴。惟當奉行向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