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一日。黃泰熙。以改題時急下來。黃弼熙以倡義疏査卞事。直到本州。抵書于本院。要院儒齊會于邑中。黃進士景幹。黃院長建中。黃載休。金相欽。趙雲慶。赴鄕會所。是日。全始玉。自京直到鄕會所。以錯認事實。徑自發單之意。謝過于黃氏門中。至有請撻之語。鄕中僉長老。因黃泰熙。黃弼熙。詳聞疏廳消息。盖伏閤已過四五朔。而前後承宣。互相推諉。實無捧入之意。且疏廳經費。已過千金。黃氏本孫。雖竭力助送。而公私財力。蕩然無餘。鄕中諸議。皆以罷歸爲言。爲本孫者。咸以爲然。倡義錄査正後。黃弼熙。因爲赴京。黃氏諸人。抵書于疏廳。或言罷還。或言姑留。觀勢議論携貳。
홈 > 문중 자료 > 일기 > > 01권 > 1788년 > 11월 >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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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 날 짜 | 1788년 11월 21일 / 정조12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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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용 |
21일
黃泰熙가 神主를 다시 쓸 때에 黃弼熙에게 급히 내려와 창의소를 조사하여 일을 밝히고, 곧장 本州에 도착하여 본 서원에 편지를 보내 서원의 유생들에게 邑中에 일제히 모여 줄 것을 요청했다. 進士 黃景幹, 院長 黃建中, 黃載休, 金相欽, 趙雲慶 등이 鄕會所로 달려갔다. 이날 全始玉가 서울로부터 곧장 향회에 도착하여 사실을 잘못 알고 앞질러 單子를 발행한 뜻을 黃氏 門中에 사과하고, 매질을 해달라는 말이 있기까지 하였다.
鄕中의 여러 長老들은 黃泰熙와 黃弼熙로부터 疏廳의 소식을 자세히 들었는데, 대개 이러했다.
대궐문에서 상소를 청한 일이 이미 너덧 달이 지났으나 앞뒤의 承旨[承宣]이 서로 전가하여 참으로 받아서 임금에게 올릴 뜻이 없는 것 같았다. 또한 疏廳의 경비가 이미 千金을 넘어서서 黃氏의 本孫들이 비록 힘을 다해 보내주기는 하나,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재력이 탕진되어 여력이 없다. 鄕中에서 여러 사람이 의논하였으나 모두 끝내고 돌아오자는 것으로 말을 삼고, 본손이 되는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倡義錄에서 그릇된 것을 조사하여 바로잡은 후에 黃弼熙가 서울로 갔다. 그때 황씨의 여러 사람들이 疏廳에 편지를 보냈는데, 어떤 사람은 끝내고 돌아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잠시 머물며 형세를 살펴보라고 하여 의논이 분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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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一日。黃泰熙。以改題時急下來。黃弼熙以倡義疏査卞事。直到本州。抵書于本院。要院儒齊會于邑中。黃進士景幹。黃院長建中。黃載休。金相欽。趙雲慶。赴鄕會所。是日。全始玉。自京直到鄕會所。以錯認事實。徑自發單之意。謝過于黃氏門中。至有請撻之語。鄕中僉長老。因黃泰熙。黃弼熙。詳聞疏廳消息。盖伏閤已過四五朔。而前後承宣。互相推諉。實無捧入之意。且疏廳經費。已過千金。黃氏本孫。雖竭力助送。而公私財力。蕩然無餘。鄕中諸議。皆以罷歸爲言。爲本孫者。咸以爲然。倡義錄査正後。黃弼熙。因爲赴京。黃氏諸人。抵書于疏廳。或言罷還。或言姑留。觀勢議論携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