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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788년 6월 9일 / 정조12 / 무신
내 용
우러러 아우들을 위로하는 것은 쇠약해진 병이 날로 심해지고 금년에 천연두[痘癘]가 도처에 많이 앓았을 뿐만 아니라, 하늘로부터의 근심과 원통함이 우리집안에 더욱 심했기 때문이다. )巖의 세 從兄弟들 집안이 멸족의 화를 두루 만났으니, 비통함을 어찌 차마 말로 할 수 있겠는가? 천연두로 집에 웅크리고 있어 사람들과 접촉함이 드물어 세간의 일을 듣지 못한 것이 오래되었다. 그런데 지금 일러주신 말씀을 받드니, 임금께서 儒生들이 청한 것에 새롭게 은혜를 내려 그 원하는 것을 많이 이루었다고 하였다. 본 서원에서 賜額을 청한 일은 바로 이때이다. 놓치면 안 될 일이니 마땅히 의견을 받들어 다함께 나아갔다. 그러나 동생은 다리가 아픈 증세가 갈수록 심해져 말안장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明이라는 아우는 근래에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욱신거리는 증세가 더해져서 마음대로 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두 회의의 말석에도 나아가 참석하지 못했다. 동생들의 있고 없음은 진실로 경중을 가릴 수가 없었으니, 사사롭게 부끄럽고 송구스러움을 어찌 다 고할 수 있겠는가? 繞浦에 사는 一家 아저씨[族叔]의 집안에 전염병이 침범하였는데, 이제 막 차도가 있게 되었다고 마침내 편지를 보내와서 "오직 바라건대, 大議를 확실히 정하여 큰일을 속히 이루어져 중요한 자리가 더욱 중요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지없다."라고 하였다. 院長趙鎭完가답장한편지에서이렇게말했다. "겨울부터여름까지조금도편안할날이없었습니다.문밖을나가지못한것이한달이지났습니다.또한돌림병으로서로만나이야기를하지못한것이이미해를넘기는데이르렀습니다.바야흐로탄식하며간절히그리워하던때에마침서원에서심부름꾼이와서삼가편지를받으니마치큰보배를대하는것과같았습니다.이에여름철임에도여러분이편안히거처하심을알게되어우러러위로가됨을감당할수가없습니다.다만栗里의친척형이喪事를주관하다가오랜세월에병이들었으니이상한일이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애석하고 애통함을 어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듣자니, 士剛 형은 그 며느리의 천연두가 이미 나았다고 하니, 이는 그 집안의 경사일 뿐만 아니라 친구로서 마음이 참으로 기쁩니다. 그런데 늙은 아우의 병이 갈수록 깊어져 사람의 일을 완전히 폐지한 것이 오래되었으니, 들고나는 한 가지도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어제 들으니, 訥村에 있는 손녀의 남편이 죽었다는 흉한 기별은 참혹함에 놀란 심정을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玉洞書院가사액을청한일을보면조정에서이미恩典을널리베푼것이있으니,이서원에서도사림이사액을청하는행위가없을수없습니다.그러나다만부음을들은뒤라세상의일에경황이없어달려가얼굴을맞대고의논할수없으니,한스러움이어떠하겠습니까?" 盧重文院長이답장한편지에서이렇게말했다. "오래도록가르침을받지못해바야흐로간절히우러러흠모하던때에뜻하지도않게삼가여러분이보내주신편지를받아보게되었습니다.삼가살펴보니근자에여러분의근황이두루평안하다고하니위로가됨을저의마음은이길수가없습니다.저는예전처럼지내고있습니다.그러나집안에젊어죽어가는일이전후로계속이어짐으로해서생겨나는갖가지광경을참으로살아있는사람으로서견디기힘듭니다.어찌해야하겠습니까? 옥동서원이아직사액을받지못한것은참으로훌륭하신임금의세상에서흠이되는일이니,우리고장유림이개탄한지가오래됩니다.지금조정에서은전을널리베풀고있으니,이것은참으로잃을수없는좋은기회입니다.전하의생각이이미전해졌다는것을받들어알게되었으니얼마나다행이겠습니까.다음날에오라고하시면감히명하는대로따르지않겠습니까.다만타는말을갑자기빌리기가어려워모레첫새벽에마땅히나아가옥동서원에서절을드리고삼가말씀하시는것을듣겠습니다.그러니아마도일을당하고나서야후회할것이있을까두려우나,나머지는양해해주시기를바랍니다." 道谷書堂의 答通文은 다음과 같다. "본서원에서사액을청한일에지금겨를이없는것은사림이공통적으로개탄하는일이다.지금성대한가르침을받았으니감히한목소리로따르지않겠습니까.이에저희서당에서는이름을적은두루마리를만들어올리니상고하여살펴봐주시면참으로다행이겠습니다. 有司趙,李" 魯東書堂의答通文은다음과같다. "玉洞書院가사액을청한사실은斯文의성대한일이며,사림의다행이니,마땅히다시어떻게하겠습니까.우리서당의이름을적은두루마리를가르침에따라써서올리니살펴보시고받아주시면참으로다행이겠습니다. 有司全" 頴濱書堂의 答通文은 다음과 같다. "貴院에서사액을청한일은진실로우리고을의큰일이었습니다.그런데지금까지세월만흘려보낸것을사림이개탄한지가오래되었습니다.보내온글을받아보니,어찌斯文의다행이아니겠습니까.곧이름을적은두루마리를가르침에따라거두어올리니양해해주시면참으로다행이겠습니다. 有司權,李" 首陽書堂의答通文은다음과같다. "貴院에서사액을청한일은호남영남사이에서오랫동안힘써온것에부응하는것이니,참으로사림의다행이라고해야할것입니다.본서당에서는이름을적은두루마리를지시에따라거두어보내니양해해주시면참으로다행이겠습니다. 山長韓" 竹林書堂의答通文은다음과같다. "貴院에서사액을청한일은이전에는우리고을에서겨를이없었던전례이었습니다.그런데여러분께서먼저큰의론을발하여이렇게두루보여주시니,함께따르는뜻에감히한목소리로응하지않겠습니까.이에이름을적은두루마리를거두어가르침에따라드리니양해해주시면참으로다행이겠습니다. 山長洪,有司南,柳" 智川書堂의 答通文은 다음과 같다. "貴院에서사액을청한일은진실로斯文의다행이니,누가일제히모이는날에즐겨달려가지않겠습니까.곧유생의이름을적은두루마리를먼저기록하여드리니살펴보아주시면참으로다행이겠습니다. 山長康,有司康" 松巖書堂의答通文은다음과같다. "삼가생각건대,貴院에서바야흐로큰일을경영하니,사림에서찬양하고경하함이얼마이겠습니까?우리서당에서도마땅히유생들이가서참여하기로정하였습니다.그러나각자피붙이를잃은일에골몰하여단지이름을적은두루마리를만들어보내는것은살펴보아주시면참으로다행이겠습니다. 有司金" 鳳巖書堂의答通文은잃어버려옮겨쓰지못했다. 首善書堂의答通文은잃어버려옮겨쓰지못했다. 龍門書堂의答通文은잃어버려옮겨쓰지못했다. 石門書堂의答通文은잃어버려옮겨쓰지못했다. 梅嶽書堂의答通文은잃어버려옮겨쓰지못했다. 孤峯書堂의答通文은잃어버려옮겨쓰지못했다. 14개 서당의유생들의이름이적힌두루마리가차례로도착하였다.安平과瀰川,그리고壽峰의황씨들가운데노인과젊은이수십명이본서원에함께모여큰일을확실히정하고,노자돈을처리하였다.그리고본서원에는현존하는인물이없었는데,院長黃瑞熙가몸소왔다.그리고新川에사는黃碩休가집안에서동전100꿰미를빌려겨우여행에필요한물품을갖추었다.그러나보낼만한사람이없어본손중에는院長黃瑞熙로정하고,사림중에는院長盧重文로정했다.이날院長孫益顯가서원의회의에참석하고,盧院長은본가에돌림병의기운이어른을침범하여글로써사퇴하고가지않았다.會中에서는의논하여斯文의趙虎然, 斯文의 鄭宗魯로 정했다. 그리고 鄭宗魯는 천연두를 앓지 않았기에 위험을 무릅쓰게 할 수 없었고, 趙虎然가 거처하는 곳에 잠깐사이에 병으로 인한 사고가 없었는지 또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헛되이 날을 보내며 오래 끌다가는 혹시라도 나중에 염려가 있을까하여 本面에 사는 사문의 趙奎鎭 한 사람만을 추천하여 특별히 정하니, 趙奎鎭가 마침내 결의하고 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날 葛田에 사는 趙氏들이 들어와 모였다. 進士 黃景幹는 이로부터 상소문을 쓰는 일을 행하려 하니, 본 서원의 힘과 기세가 참으로 이겨내기 어려웠다. 서울에들어간후에는厖村의本孫參判黃昇源監察黃瑗와서로의논하여때를보고세를살핀후에비로소疏廳을설치하고,만약상소의실무진[疎任]에成均館과四學에居齋하는유생가운데반드시많은영남의선비를천거하여내보낸다면모두가승낙할것이라고하였다.이에네선생의實記와奉安文의글자를수정하고,말두필을세내어27일에출발하였다.黃弼熙는본서원의齋任으로여행에따랐고,출발에즈음하여院長黃瑞熙는建中이新安의柳下에서멀리떠나려하는데이렇게경계의말을했다. "이런더위의여정을맞이하여여행의짐[行李]을신중히간직하라." 또이렇게도말했다. "무릇일이불가능하더라도,구하면가능하게되고,구하면이루어지게된다.서울에도착하면보는것이들은것과같지않아틀어져어긋나합치하기가어려울것이다.그러하니서원의재물을헛되이낭비하지말것을명심하라." 용감히물러날것을결심하고얼굴을맞대고거듭거듭말하자일행모두가"알겠습니다."하고대답했다.黃宅坤가일행을관리하며따라갔다. 6월 9일 노비와 말이 돌아와 監察 黃瑗의 답장을 黃氏의 宗中에 보내왔다. 대략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본 서원이 아직도 사액이 요청되지 않은 것은 사문의 흠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혹시 그 때가 아닐 염려가 있을 수 있으며, 貞台의 뜻 또한 그러합니다." 대개 그 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成均館과 四學에 소란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때는 임금께 글을 올리는 것을 그 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院長 黃聖休가 여러 일족에게 이렇게 편지했다. "서울에 있는 두 일가 사람의 뜻에는 때가 아닌 것이 염려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宰相 蔡濟恭에게 질의를 해보니, 본 서원이 사액을 요청하는 것은 또한 이미 늦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소의 글에 어찌 때가 아닌 염려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내려가지 말고 속히 대궐문 밖에서 상소를 청하라[伏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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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仰慰。弟等。不但衰病日甚。今年痘癘。到處多惡。而夭慽寃慘。鄙家尤甚。龜巖三從兄弟家。偏値覆巢之禍。慘痛何忍言。蟄伏痘窠。罕與人接。不聞世間事。久矣。今承所示。恩霈新降。儒士所請。多遂其願云。本院請額之擧。政是時哉難失。事當齊進奉議。而弟則脚痛轉甚。不堪鞍馬。明弟。近添頭暈眼疼之症。不得任意出入。俱未得晋參會議之末。弟等有無。固不足輕重。而歉悚之私。何可盡喩。繞浦族叔。以室中犯癘。方寓在稍間之地。從當傳送來書耳。惟願敦定大議。速成大擧。使重地增重。區區之望也。 趙院長鎭完。答書曰。自冬至夏。小無寧日。不出門外。已閱月矣。且以癘疫相阻。奉唔已至經年。方庸瞻詠。卽於院伻來。謹承僉惠翰。如對十朋。仍審仲夏。僉履啓居萬相。仰慰無任。第栗里戚兄主喪事。年深抱病。不是異事。而其人可惜。痛悼何言。聞士剛兄子婦。痘症已至出場。非徒其家之慶。知舊之心。欣喜十分。弟。老病轉深。全廢人事。久矣。出入一節。不可論。且昨聞訥村孫婿之凶音。慘愕。情緖尤無以爲喩。示玉院請額事。朝家旣有廣施之典。則此院不可無士林請額之行。而弟則以聞訃之後。了無世況。不得趍進面議。恨何如之 盧院長重文答書曰。久未承誨。方切瞻仰。不自意。伏承僉下札。謹伏審近者僉體履。震艮萬相。伏慰不任下悰。記下。依昨而門內慘喪。前後相繼。種種光景。實今人難耐。奈何奈何。玉洞之尙未蒙額。實是聖世欠典。吾鄕儒林之慨恨。久矣。今有朝家廣施之典。則此誠不可失之好機會也。承知盛籌已定。何幸何幸。明日來汝之敎。敢不惟命。第所騎猝難借得。再明曉頭。當進拜於玉院。恭聽緖論。而恐或有後事之悔。幸以下諒是望 道谷書堂答通。本院請額之擧。至今未遑者。士林之所共慨歎也。今承盛諭。敢不齊聲以從。玆以鄙堂名帖修呈。考覽幸甚。有司。趙。李 魯東書堂答通。玉院請額事。實是斯文盛擧。士林之幸。當復如何。本堂名帖。依敎書呈。考納幸甚。有司。全。 頴濱書堂答通。貴院請額之擧。實是吾鄕大事。而迄今遷就。士林之慨然者。久矣。卽承來諭。豈非斯文之幸。卽名帖依敎收呈。諒悉幸甚。有司。權。李。 首陽書堂答通。貴院請額之擧。際此湖嶺間。蒙允之下。實是士林之幸。本堂名帖。依示收送。諒悉幸甚。山長。韓。 竹林書堂答通。貴院請額之擧。前此吾鄕未遑之典。僉尊首發大論。有此輪示。其在共尊之義。敢不齊聲而應之哉。玆收名帖。依敎謹呈。諒悉幸甚。山長。洪。有司。南。柳。 智川書堂答通。貴院請額之擧。實是斯文之幸。孰不樂赴於齊會之日。卽儒生名帖。先爲錄呈。考察幸甚。山長。康。有司。康。 松巖書堂答通。伏以貴院方營大擧。士林之攢慶。爲如何哉。鄙堂當定儒生往參。而各汨喪慽。只以名帖修送。照察幸甚。有司。金。 鳳巖書堂答通。遺失未謄。 首善書堂答通。遺失未謄。 龍門書堂答通。遺失未謄。 石門書堂答通。遺失未謄。 梅嶽書堂答通。遺失未謄。 孤峯書堂答通。遺失未謄。 十四書堂名帖。次第來到。安平瀰川壽峰。黃氏老少數十。入齊會于本院。敦定大事。料理行資。而本院無見存之物。黃院長瑞熙。躬往新川黃碩休家。貸百緡銅。僅備行具。而無可送之人。本孫中。定黃院長聖休。士林中。定盧院長重文。是日孫院長益顯。參院會。盧院長。以本家癘氣上犯。書謝不赴。會中議定。趙斯文虎然。鄭斯文宗魯。而鄭斯文以未痘。不可犯危。趙斯文所居。稍間其無病故。又未可知曠日持久之際。恐或有後時之慮。以本面趙斯文奎鎭。單望特定。趙斯文。遂決意許行。是日葛田趙氏。諸入來會。黃進士景幹。以爲自此治疏行。則本院力勢。實難堪勝。入京後。與厖村本孫黃參判昇源。黃監察瑗。相議觀時審勢然後。始設疏廳。若其疏任。則館學齋儒中。必多嶺士。可以薦出云云。咸曰。諾。於是。修正四先生實記。及奉安文字。貰二馬。二十七日治發。黃弼熙。以本院齋任。從行。臨發。黃院長瑞熙建中。遠將于新安柳下而戒之曰。値此炎程。愼攝行李。且曰。凡事不可求可求成。到京所見。不如所聞。而齟齬難合。則勿以虛費院財。爲念決意勇退。申申面諭。一行咸曰。唯唯。黃宅坤。以管行隨去。 六月初九日。奴馬還來。黃監察瑗答書於黃氏宗中。畧曰。本院之尙未請額。實爲斯文之欠典。而恐或有非其時之慮。貞台之意亦然云云。盖非其時云者。以館學紛撓。此際封章。非其時之謂也。黃院長聖休。與諸族書曰。京中兩族人之意。以非時爲慮。而就質于蔡相濟恭。則以爲本院請額。亦已晩矣。如此疏章。有何非時之慮。勿爲下去。從速伏閤爲言。云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