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2책 > 01권 > 1862년 > 11월 >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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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11월 9일 / 哲宗 13 / 壬戌
날 씨 추위가 어제와 같다.
내 용
한양에 간 집안 심부름꾼이 오늘 아침에 비로소 내려와서 가아(家兒)[김우흠(金宇欽)]가 편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鄭) 정승이 지난 27일에 경연에 참석했다고 한다. 광주(廣州)의 백성 8천 7백여 명이 길옆에 엎드려 폐단을 바로 잡기를 바랐는데, 좋게 처리하는 유지를 내렸다고 하니 이는 다행스러울만하다. 그러나 함흥의 백성들이 환곡의 세금을 없애자고 여럿이 난을 일으켰다. 감옥을 부수어 죄수를 풀어주고 이서(吏胥)의 집을 불태우고 부수었는데, 진주, 상주와 다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임금이 난의 수괴 이면주(李冕周), 박 모(朴某) 등 3인을 효수하라고 명을 내렸다고 했으니 또한 적은 근심이 아니다. 나의 실직은 이번 겨울은 지나가는 듯하니, 이는 다행스러울만하다. 김문형(金文衡)의 답장 편지가 왔다. 나는 오늘 낮에 또 추위로 오한이 시작되어 낮밤으로 고통스러웠다. 둘째 아이가 부(府)의 고복(考卜)에서 저녁 무렵 돌아왔다. 수령은 이번 달 12일 한양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야일당(野逸堂)의 작은 주인이 보러왔으나 나는 병으로 응접하지 못했으니, 유감스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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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九日。
寒事如昨。京去家伻。今朝始下來。聞家兒安信。鄭閤登筵於去念七。廣州民人等。八千七百餘名。伏路懇乞捄瘼。以好樣區處。諭送。是可幸也。而咸興民人等。以罷還督捧。群起作亂。破獄放囚。燒毁吏胥之家。無異晉州尙州。以上令梟首亂魁李冕周朴某等三人云。亦非細憂。吾之實職。似過今冬。是可幸也。金文衡答書來到。予今午又發寒戰。終日夜苦痛。次兒。自府中考卜。乘暮還。聞主倅。以今十二日上京云。野逸堂小主人來見。而予病未酬接。爲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