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2책 > 01권 > 1861년 > 2월 >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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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10+KSM-WM.1861.4717-20180630.00000001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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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1년 2월 23일 / 哲宗 12 / 辛酉
내 용
이른 아침에 관에서 이방[首吏] 및 도리(都吏)를 시켜 결총(結摠)의 전전문기(前前文記)를 가지고 내가 있는 곳의 아래에서 증험했다. 수령이 담당하지 않으려고 하니 진실로 매우 통탄스러울만하다. 식후에 도소(都所)로 가서 이별을 알렸다. 억지로 만류하는 자가 많았으나 자기의 근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데 계속해서 어떻게 하겠는가. 경동(京洞) 조 참판(趙參判)의 청지기 김영진(金永鎭)이 이 고을의 경주인(京主人)으로 내려와 관저에 머물렀다. 내가 들어온 것을 듣고 와서 그 주인 영감이 그로 하여금 문후하게 했다고 전하니,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이 매우 지극했다. 김영진(金永鎭)은 함풍 황제(咸豊皇帝)가 지난달 19일 다시 황성(皇城)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달성 감영의 과거 유생이 부중(府中)을 지나갔는데, 전하길 초장의 제목은 "주에서는 태학으로 천거했으나, 선비들이 많은 것이 전에는 드문 바이다."고 했다. 관덕당(觀德堂)에 사람이 넘쳐나 진실로 종이 값이 두 배가 뛰었다고 했다. 나는 저녁 무렵 횃불을 들었는데, 아이의 병이 한결같이 심하니 나의 피곤함도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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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三日。
早朝。官使首吏及都吏。持結摠前前文記。來質於吾下處。主倅之不欲擔當。誠極可痛。食後。往都所告別。强挽者多。而其於自己筋力之莫可堪。承何。京洞趙參判之傔人金永鎭。以本府京主人。下來留邸。聞吾入來。來傳其主人令監■使之問候。致繼眷。永鎭言咸豊皇帝去月十九日。復入皇城云。達營科儒。已過府中。傳初場題曰。州賓興於太學。而士多前古稀有。觀德堂圍充溢。誠紙倍價云。予椉昏擧火。則家兒病一樸樸。予之疲薾。則極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