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2책 > 01권 > 1862년 > 4월 >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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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10+KSM-WM.1861.4717-20180630.00000001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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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2년 4월 8일 / 哲宗 13 / 壬戌
날 씨 구름이 끼고 흐리다가 비가 조금 내리다. 저녁에 또 비가 내리다.
내 용
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가 오늘 모음사에 성묘하고자 포(脯), 과일, 고유문(告由文)을 갖추었으나 비올 기미가 있어 하지 못했다. 가질(家姪)이 원곡(原谷) 송호서원의 입향 모임에 갔다. 원촌(遠村) 척손(戚孫) 이만시(李晩時)가 전하기를 예안(禮安) 관노 종릉(鍾陵)이 접때 집을 허문 뒤로 곧장 사동(寺洞)으로 가서 행랑(行廊)에 몸을 맡긴지 몇 년이 되었는데, 올해 중춘(仲春)에 훈장(訓將)에게 한 장의 편지를 올려서, 계상(溪上)의 이 씨(李氏) 전 가문이 그가 운계(雲溪) 서원의 역사를 간호(看護)한 것 때문에 원수처럼 미워하여 집을 허물고 내쫓아 버리라고 했다고 했다. 계속해서 이르기를, 관(官) 또한 영남사람으로, 알면서도 단속할 줄 몰았다. 강릉령(江陵令)이 무함하는 편지를 보고 관(官)의 아들 주서 류도창(柳道昌)에게 말했으나 도창은 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종릉의 아들과 나란히 함께 반촌에 왕래하며 마지막에는 그와 함께 고삐를 나란히 하고 내려와 사뭇 구설이 있었다고 했다. 명리(名利)의 집을 완전히 없앴으니 경위(涇渭)가 여타와 다름이 있어 탄식할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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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八日。
雲陰微雨。宇兒今日將省墓慕音。具脯果告由文。寅雨意未果。家姪行原谷松湖院入享會。遠村戚孫李晩時傳。禮安官奴鍾陵。自嚮毁家之後。卽往寺洞。寄身廊底有年。今仲春。問上一幅紙於訓將曰。溪李全門以渠看護雲溪院役事。嫉如仇讐。毁家逐境云云。繼曰。官亦嶺人。知而不知撿。江陵令見其誣陷之紙。言于官之子柳注書道昌。道昌不爲怪。與鍾陵之子比肩。來往於泮村。末乃與之幷鑣下來。頗有唇舌云。全沒名利之家。其經胃與它有異。可歎。夕又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