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2책 > 01권 > 1861년 > 12월 >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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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10+KSM-WM.1861.4717-20180630.00000001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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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1년 12월 2일 / 哲宗 12 / 辛酉
날 씨 날씨가 매우 화창하다.
내 용
아침에 귀복(貴福) 놈이 서울에서 비로소 돌아와 우 아(宇兒)[김우흠(金宇欽)]의 편지를 받아보고서 추위의 괴로움이 점점 심해짐을 알게 되니 걱정되지만 정월부터 내년 일 년까지 일차강(日次講)에 대한 논의가 있다고 하니 매우 다행스럽다. 소식에 부여(扶餘)의 백성이 고을의 폐단으로 남산(南山) 봉화를 올렸고, 전병사(前兵使) 염종수(廉宗秀)는 본래 파평 염가(坡平廉哥)로 강화(江華) 염보길(廉輔吉)의 척당(戚黨)인 박영복(朴永福)이라 이름 한 놈에게 돈을 써서 영복(永福)[박영복(朴永福)]의 어미를 꾀어 금상의 생모 부부인(府夫人) 용담 염씨(龍潭廉氏)의 관향을 바꾸어 파평(坡平)으로 족보에 넣어 남북 병사, 수사의 자리를 빛내게 되었다. 지난달에 보길(輔吉)[염보길(廉輔吉)]이 신문고를 쳐서 원정초(冤情草)를 올려 강화도를 조사하여 종수(宗秀)[염종수(廉宗秀)]를 참하였으니 극변이다. 듣기에 조만간 시호를 의논하는 일이 있어 장차 이달 내에 선조의 시장(諡狀)이 걸릴 것이라고 하니, 초조하고 답답함을 견딜 수 없다. 저녁에 병산서원(屛山書院) 접소(接所) 성상(城上: 관아의 하례)이 접유사(接有司)의 편지를 가지고 왔으니, 대개 예안쉬(禮安倅)가 봉화겸관(奉化兼官)이 되어 영문(營門)의 수판(壽板)하는 일로 열일을 제쳐두고 올라온 일 때문이다. 이 형은 문 앞의 길에서 보았지만 내가 도중에 보낸 편지를 보지 못하였으니, 합석하여 고권(考券)하는 일이 매우 낭패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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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二日。
日氣甚和。朝貴福漢自京始還。得見宇兒書。知寒苦轉深。爲憫。而聞自正月至明年一年。有日次講之議云。幸甚。時耗扶餘民。以邑瘼。擧南山烽火。前兵使廉宗秀。本以坡平廉哥。行貨江華廉輔吉之戚黨朴永福爲名漢。誘永福之母。改當宁所生母府夫人龍潭廉氏貫鄕。以坡平入刊璿譜。致此南北閫守之燀爀。去月分輔吉擊申門鼓。上冤情草。行査江都斬宗秀。極變也。聞有從近議謚之擧。將以月內掛先祖謚狀云。不勝燥鬱。夕屛院接所城上奉接有司書來。蓋禮安倅爲奉化兼官。以營門壽板事。撥忙上來。此兄見之於門前路。而吾之中路書未見也。合席考券事。極爲狼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