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김중휴일기(金重休日記) 2책 > 01권 > 1861년 > 9월 >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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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10+KSM-WM.1861.4717-20180630.00000001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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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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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1년 9월 10일 / 哲宗 12 / 辛酉
날 씨 구름이 끼고 흐리다.
내 용
늦은 아침에 우이원(禹以遠) 형이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갔다. 수동(繡洞) 오한(吳漢)이 자리를 지고 상경하여 돌아오는 길에 들어와 우아(宇兒)[김우흠(金宇欽)]의 이번 달 2일에 보낸 편지를 전했다. 또 부한(府漢) 이치연(李致衍)이 한양에서 와서 이번 달 초5일의 편지를 전했다. 하루 안에 다시 오백 리 밖의 안부편지를 얻으니 위로가 되었다. 나라가 망하여 쇠퇴하는 때를 만나서 함풍제가 세상을 떠났다. 칙사(勅使)가 장차 이르고, 진위(進慰), 원접(遠接)과 관반(館伴: 사신의 접대를 맡아 하는 임시 벼슬. 또는 그 벼슬아치)의 행차가 비용을 쓰는 것이 허다하였다. 방백수령(方伯守令)을 개차(改差: 관원을 갈아냄)하는 의론이 있다고 하니 놀람을 감당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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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十日。
雲陰。晩朝。禹兄以遠約明春重來歸。繡洞吳漢負席上京。回路入傳宇兒今初二日書。又府漢李致衍自京來。傳今初五日書。一日之內。再得半千外安信。爲慰。而値國用凋殘之時。因咸豊崩逝。勅使將至。進慰遠接館伴之行。靡費許多。聞以改差方伯守令有議云。不勝駭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