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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550년 7월 29일 / 明宗 5 / 庚戌
내 용
석호겸(石好謙)석구(石球)의 아들이다.】이 뵈러 와서 말하기를, "어제 저녁에 유신현(惟新縣)의 문안이 사헌부에 도착하였는데 환급에 대한 서목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또 말하길, "사또가 초정(椒井)에서 목욕하신 날을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가군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작년 6월 26일에 초정에 갔다가 【초정청안현(淸安縣)에 있다.】 7월 초2일이 되어서 청주(淸州)에 돌아왔다네. 역적의 전답과 노비를 추쇄하는 일은 5월에 시작했다가 8월이 되어서야 끝났네. 어찌 누락된 노비 추쇄가 원래의 추쇄가 끝나기도 전에 먼저 있었겠는가?" 【전답과 노비를 추쇄한 후에 또 누락된 것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다시 추쇄를 가하라고 명하였다.】
석호겸이 말하였다. "저의 아버지가 그 때 하번 날인 것을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해 상하번에 사용된 말에 관한 문서 전수를 가지고 와서 살펴보니 6월 25일에 하번이었고, 8월 초5일에 상번이어서 초정에 모시고 갔던 일이 파헤치지 않아도 저절로 밝혀졌습니다."
이 때문에 성내면서 말하길, "이 문건이 아니었다면 밝히기 어려웠을 것이니 어찌 이처럼 애매모호한 일이 있단 말입니까?"
가군께서 말씀하시길, "그런 즉 대간의 말이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이 문서를 가지고 있으면 거의 저절로 밝혀질 것이네. 그러나 기유년(1549년)부터 비로소 영리가 번을 교대할 때 역마를 함부로 타지 말라는 법을 만들었으니 【비록 이런 법이 있었지만 영리(營吏)들이 역마가 아니면 시기에 맞춰 번을 교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시기에 여러 도(道)에서 모두 법을 따라 행하지 않았다.】 이렇게 털을 불어가며 허물을 찾는 때에 이 때문에 죄목에 드러남이 없지 않을 것이니 삼가 가볍게 올리지 말고 천천히 그 변화를 살펴보다가 형세가 장차 부득이해진 후에 올리게."
우리들을 돌아보고 말씀하시길, "나는 항상 예전에 충후한 시인들이 혹 참언에 걸려들고 비난을 두려워하는 점이 있어서 언사가 크게 지나치다고 의심했었는데 지금 내가 생각해보니 실로 내 마음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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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九日。
石好謙【石球之子】。來謁曰。昨夕惟新文案到府。而還給書目又不得。且曰。使道浴于椒井之日。未能記憶。家君曰。予前年六月二十六日往于椒井。【椒井在淸安縣。】 至七月初二日還淸州。逆賊田民推刷自五月始。至八月乃畢。安有漏落奴婢推刷先於元推刷未畢之前乎。【田民推刷後。聞亦有漏落者。故復命加推刷。】 好謙曰。小人父其時下番之日。無以發明。故前年上下番馬文字。專數取來考見。則六月二十五日下番。八月初五日上番。陪行椒井之事。不攻自破。因憤憤曰。若非此文。難以發明。豈有如是曖昧之事。家君曰。然則臺諫之言。豈不謬哉。持此文則庶可以自明。然自己酉年。始立營吏遞番時毋得濫騎驛馬之法。【雖有此法。營吏等非驛馬則未能趁時遞番。故是時諸道皆不遵行。】當此吹毛求疵之時。不無以此形諸罪目。愼勿輕進。徐觀其變。勢將不得已後進之。顧謂子等曰。予常疑昔日之忠厚詩人。或有罹譖畏譏。言詞大過。今我思之。實獲我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