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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550년 7월 24일 / 明宗 5 / 庚戌
내 용
나의 장인 황윤중(黃允中)께서 말하시기를, "내가 어제 대사간(大司諫)의 집에 가서, 【대사간(大司諫)은 곧 원계검(元繼儉)으로 황 빙군(黃聘君)[황윤중(黃允中)]의 사촌이다.】 영공(令公)의 일을 물었는데, 대사간(大司諫)이 말하기를, ‘우윤(右尹)[이해(李瀣)]과 이 말을 꺼낸 자가 묵은 혐의가 있지는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우윤(右尹)의 성품이 평소에 너그러우신데 어찌 다시 다른 사람과 틈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사람이 소인[細人]의 염탐하는 말을 듣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대사간(大司諫)이 말하기를, ‘묵은 혐의가 있지 않다면 어찌 이렇게 심한 데에 이르렀습니까? 우리들은 모두 구하려고 했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는 데에 그쳤으니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저들이 비록 얽어서 모함하나 사람들이 모두 애석해하며 구하려 하니, 이것은 기뻐할 만하다."라고 하셨다.
내가 이것을 가군(家君)께 고하니, 가군(家君)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사간(大司諫)의 말이 옳다. 이무강(李無彊)이 흉악하고 음침한 자질로 요직에 있으면서 방자하게 행동하고 거리낌이 없으니 누가 그를 막을 수 있겠는가?
이무강(李無彊)은 당시에 사간(司諫)이 되었다. 처음에 진복창(陳復昌)과 함께 악행을 저지르며 서로 돕던 사람이다. 정처(正妻)를 소박(疏薄)하고 폐첩(嬖妾: 아양을 떨며 귀여움을 받는 첩)에 빠져서 시장 길의 곁에 살았다. 가군(家君)께서 이 해의 봄에 서소문(西小門) 안에 피하여 지낼 때 항상 그 집을 지나갔지만, 그의 사람됨을 비루하게 여겨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다. 하루는 궐내(闕內)에서 만났는데, 이무강(李無彊)이 말하기를, "영공(令公)께서 우리 집을 지나가시면서 들어오지 않는 것은 어찌된 것입니까? 부디 왕림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가군(家君)께서 말하기를, "알겠습니다. 제가 장차 들리겠습니다."라고 하시고는 끝내 보려하지 않으셨다. 이로 말미암아 마침내 매우 원망하였고 또 이간하는 말을 믿게 되었다. 이간하는 말은 아래에 보인다.】
송세연(宋世珩)【대사헌(大司憲)】, 원계검(元繼儉)과 나는 평소에 교의(交誼)가 좋았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두려워하는[畏首畏尾] 사람들이니, 어찌 감히 대항하여 다투겠는가? 나는 본래 재주와 덕(德)이 없는 사람으로 여러 번 시종(侍從)과 대간(臺諫)이 되어서 늘 부끄럽고 두려워하였다. 또 시변(時變)을 만나 스스로 보존하고자 꾀하여 깊은 계곡에 궁벽하게 살아서,【짐이 남산(南山)에 있어서 저자거리에서 매우 멀었다.】 어려서는 서로 부르고 찾아갔으나 지금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화(禍)가 생기니, 내가 죽을 곳을 알지 못하겠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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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四日。
㝯黃聘君【允中】曰。予昨者往大諫家。【大諫乃元繼儉。聘君之四寸也。】問令公事。大諫曰。右尹與出此言者。得無有宿嫌乎。予曰。非也。右尹性素寬裕。豈復與人有隙哉。但其人聽細人之諜言云耳。大諫曰。非有宿嫌。何至於此極乎。吾等皆救之。而終不聽止。必有以也。彼雖搆陷。人皆愛惜而救之。是可喜也。㝯以此告家君。家君曰。大諫之言是矣。以李無彊凶險之資。當塗而姿行無忌。誰能禦之。【無彊時爲司諫。初與陳復昌同惡相濟之人也。疎薄正妻。湛于嬖妾。居於市路之傍。家君是年春。避寓西小門內時。常常過其門。而鄙其爲人。一不入見。一日會於闕內。無彊曰。令公過我門而不入何也。幸須惠然。家君曰諾。吾將歷見。終不肯見。由是遂深銜之。而且信反間之言。間言見下。】宋世珩【大司憲。】元繼儉雖與我素有分好。畏首畏尾之人。安敢抗爭。我本以無才德之人。累爲侍從臺諫。尋常愧懼。且遭時變。謀欲自全。而僻居深谷。【家在南山。朝市甚遠。】少有徵逐。今者禍生無妄。吾不知死所矣。

주석

처음부터 끝까지 두려워하는 : 외수외미(畏首畏尾). 처음부터 끝까지 겁내며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는 말로. 󰡔춘추좌씨전󰡕 문공(文公) 17년 조의 “머리가 어찌 될까 두려워하고, 꼬리가 어찌 될까 두려워한다면, 몸 전체 중에 걱정되지 않는 부분이 얼마나 되겠는가.〔畏首畏尾 身其餘幾〕”라는 말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