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月初一日。
豊基叔主來哭于石峴。至檜川。全應房來奠。寘弟奔喪于丌峴。【時寘疥疾瘡疷滿身。寸步不能行。故未能遠來。而至是力疾來哭。】李子固大宇兄及琴士任來哭。午後到溫惠。
豊基叔主來哭于石峴。至檜川。全應房來奠。寘弟奔喪于丌峴。【時寘疥疾瘡疷滿身。寸步不能行。故未能遠來。而至是力疾來哭。】李子固大宇兄及琴士任來哭。午後到溫惠。
| 날 짜 | 1550년 9월 1일 / 明宗 5 / 庚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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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용 |
풍기 숙주(豊基叔主)께서 석현(石峴: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에 오셔서 곡을 하셨다. 회천(檜川)에 이르니 전응방(全應房)이 와서 전(奠)을 지냈고, 아우 치(寘)[이치(李寘)]가 기현(丌峴: 영주)으로 분상을(奔喪) 하였다.【당시 치[이치(李寘)]는 옴과 종기가 온몸을 뒤덮어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멀리서 오지 못했는데 이때엔 질병을 무릅쓰고 와서 곡을 하였다.】 이자고 대우(李子固大宇)[이대우(李大宇)]형과 금사임(琴士任)이 와서 곡을 하였다. 오후에 온혜(溫惠: 안동시 도산면)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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