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九日。
逾嶺。榮川外叔主及李大容思擧兄李習讀來哭于腰院。先是欲於此院成禮矣。凡事不具。卒未能行。到昌樂驛。察訪鄭公淸欲行路奠。辭而過去。察訪再使其子弟追至懇請。乃使之奠焉。李甫卿兄主來哭于新院。至黑石。夜已三更。祖母宅行路奠。
逾嶺。榮川外叔主及李大容思擧兄李習讀來哭于腰院。先是欲於此院成禮矣。凡事不具。卒未能行。到昌樂驛。察訪鄭公淸欲行路奠。辭而過去。察訪再使其子弟追至懇請。乃使之奠焉。李甫卿兄主來哭于新院。至黑石。夜已三更。祖母宅行路奠。
| 날 짜 | 1550년 8월 29일 / 明宗 5 / 庚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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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용 |
고개를 넘으니 영천 외숙주(榮川外叔主)와 이대용 사거(李大容思擧)[이사거(李思擧)]형과 이 습독(李習讀)[이현우(李賢佑)]이 요원(腰院: 영양)에 오셔서 곡을 하셨다. 앞서 이곳 원(院)에서 성례(成禮)를 하고자 했으나 모든 일이 갖춰지지 않아서 끝내 하지 못했다. 창락역(昌樂驛: 영주시 풍기읍 창락리)에 이르니 찰방(察房) 정공청(鄭公淸)이 노전(路奠)을 지내고자하였으나 사양을 하고 지나갔다. 찰방이 재차 자제들을 시켜 뒤따라와 간절히 청하기에 전(奠)을 지내게 하였다. 이보경(李甫卿) 형님이 신원(新院)에 오셔서 곡을 하셨다. 흑석(黑石: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흑석마을)에 이르니 밤은 이미 삼경(三更)이었다. 조모(祖母)댁에서 노전(路奠)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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