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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550년 8월 16일 / 明宗 5 / 庚戌
내 용
주인댁에 만들어 놓은 관이 있었지만 흠이 많아서 쓰지 않았다. 들으니 신이경(辛而慶) 형 집에 관이 있다고 해서 곧장 가서 보니 짧고 좁아서 쓸 수 없었다. 성무(成茂)억척(億斥) 등이 예안(禮安)에서 와서 말하기를, "찰방(察訪)[이징(李澄)]풍기(豊基)[이황(李滉)] 두 나리께서 이 소식을 듣고서 상의하여 분부하시기를 ‘큰 일이 분명히 일어날 것인데 만약 장차 돌아가시게 된다면 상행(喪行)을 관가에 의뢰할 수가 없다. 형편상 성례(成禮)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니 임시방편을 사용하여 오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우리들이 이어서 억척에게 묻기를 "이 말이 맞느냐?"라고 하니 억척이 말하기를 "성무가 직접 분부를 받고 왔고 저는 영천(榮川)에서 왔습니다.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서 맞는지 아닌지 모릅니다."라고 하였다. 우리들이 다시 성무에게 묻기를, "네 말이 과연 맞다면 이 같은 큰일을 작은아버지께서 어찌 글로 써 보이지 않으셨느냐?"라고 하니, 성무가 말하기를 "이일이 어떤 일인데 어찌 감히 함부로 전하겠습니까? 분명히 분부를 받고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최 직장(崔直長)과 이 도사(李都事)도 "이는 좋은 계책이다."라고 하였다.
형님이 도사(都事)에게 말하기를, "임시방편을 쓰는 일은 아들 된 도리로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인데 어찌 궁박하다고 해서 차마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도사가 말하기를, "자네들의 망극한 마음과 임시방편을 쓰는 편치 않은 마음에 있어서 어찌 끝이 있겠는가마는 지금을 위한 계책은 마땅히 멀리 가는 데에 편한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하니 말 두 필을 맨 수레로 간다면 거의 멀리 가는 데에 우환이 없을 것이네."라고 하였다.
형님이 말하기를 "얇은 목판을 쓰는 것은 어떠합니까?"라고 하니, 도사와 직장이 모두 말하기를, "비록 얇은 목판이더라도 그 무게가 가볍지 않을 것이니, 험한 먼 길에 중도에 수레가 부서지거나 힘이 달리면 장차 어찌 할 것인가? 또 최하손(崔賀孫)의 아들【앞서 선군(先君)께서 고변한 사람을 때려죽였다는 것에 대해 해명을 하셨기 때문에 의금부(義禁府)에서는 이를 증명하려고 추사(推事)를 통하여 최하손의 아들을 잡아오게 하였으나 그때 오지 않았다.】이 와서 다시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데 만약 화가 다시 일어난다면 비록 관이 있다한들 무엇하겠는가? 옥사(獄事)가 끝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성례(成禮)을 해서는 안 된다. 풍기(豊基)[이황(李滉)]께서 어찌 우연히 생각해서 이렇게 분부하셨겠는가?"라고 하였다.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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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六日。
主宅有造棺。而多有欠處不用。聞辛而慶兄家有棺。卽致而見之。短窄不可用也。成茂億斥等自禮安來言曰。察訪及豊基兩進賜主聞此奇。相議而敎曰。大事必出。若將不諱。喪行無所賴於官家。勢不可以成禮。莫如用權而來云云。等次問于億斥曰。此言是耶。斥曰。成茂親自受敎而來。斥則自榮川來。非所親聽。未知是否。等更問成茂曰。爾言果若是。則如此大事。叔主豈不書示乎。茂曰。此事何等。豈敢妄傳。丁寧受敎而來。崔直長李都事亦曰。此計得矣。兄主言於都事曰。用權之事。人子決不可爲之。豈可以窮迫忍爲此乎。都事曰。於公等罔極之情。用權未安之意。何可旣也。然爲今之計。當以便於遠致爲先。以雙駕馬轎輿行。庶無患於遠致。兄主曰。用薄板何如。都事直長皆曰。雖薄板。其重不小。崎嶇遠路。中途而車摧力困。則將若之何。且不知崔賀孫之子【先是先君發明告變人撲殺。故禁府以憑推事使拿來崔賀孫之子。而時未來。】來復何言也。禍若更起。則雖有棺何爲。獄事未畢。不可遽以成禮也。豊基豈偶然計而敎之以此乎。子等不獲已從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