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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550년 7월 17일 / 明宗 5 / 庚戌
내 용
추고(推考)하는 전지(傳旨)가 사헌부에 내려졌다. 유섭(柳涉)이 와서 가군(家君)께서 묻기를, "역당(逆黨)의 누락된 노비를 추쇄(推刷)할 때 내가 어떻게 처리하였는가?"라고 하였다.
유섭(柳涉)이 답하기를, "유신현(維新縣)의 추쇄(推刷)하는 첩보(牒報)를 영공(令公)께서 들고서 보며 말하시기를, ‘토지와 노비는 마땅히 그 쓰임대로 적으나, 자질구레한 잡물에 이르러서는 관가(官家)에 이로울 것이 없고, 다만 맡아서 관리하는 데에 폐를 끼치니, 제거하는 것만 못한 듯하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하셨습니다. 제[유섭(柳涉)]가 말하기를, ‘명령하신 것이 지당합니다.’라고 하니, 영공(令公)께서 마침내 효주(爻周)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실로 폐단이 없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오늘 도리어 후환(後患)이 생길 줄을 생각지도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가군(家君)께서 말씀하시길, "장차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하셨다. 유섭(柳涉)이 말하기를, "마땅히 이대로 대답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여러 지인들이 와서 위문하고, 일의 전말을 물었다. 가군(家君)께서 답하시기를, "유신현(維新縣) 역당(逆黨)의 전민(田民), 잡물(雜物)을 본현(本縣)에서 추쇄(推刷) 첩보(牒報)한 것에 대해 나와 도사(都事)가 상의하여 말하기를, ‘노비[臧獲]와 전답은 추쇄하는 것이 옳지만 자질구레한 잡물에 이르러서는 관가(官家)에 보탬이 없어서 한갓 번거로운 폐단만 끼치므로 그 긴요하지 않은 물건을 효주(爻周)하자고 했을 뿐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화(禍)가 생기니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세 차례 해명하는 답변을 하였다.
사간원(司諫院)의 한 관원이 말하기를, "환급문서(還給文書)를 거행한 사람은 유신현(維新縣)의 수령(守令)입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본 자가 있을 것이니 마땅히 증빙하여 고찰해야합니다."라고 하였다.
사헌부(司憲府)에서 곧 삼현령(三懸鈴)을 유신현(維新縣)에 발송하여 영리(營吏) 석구(石球)에게 추쇄문안(推刷文案) 및 서목(書目) 등을 가져오게 하였다.
석구(石球)유신현(維新縣)에 살았으므로 그로 하여금 가져오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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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七日。
推考傳旨下司憲府…柳涉來。家君問曰。逆黨漏落奴婢推刷時。予何以處之。柳公答曰。本縣推刷牒報令公擧而視之曰。田民則當籍其用。至於細鎖雜物則無益於官家。而徒貽弊於典守者。不如除去之爲愈。於君意何如。涉曰。令敎至當。令公遂命爻周。此實使無弊也。而不圖今日。反生後患。家君曰。計將安出。涉曰。宜以此答之。諸知舊來唁。因問事之顚末。家君答曰。惟新逆黨田民雜物本縣推刷牒報。予與都事相議曰。臧獲田畓則可。至於細鎖雜物。無補官家。徒遺煩弊。遂爻其不緊之物而已。禍生無妄。末如之何。三度抗答。諫院有一員曰。還給文書。惟新之倅。擧行之人。故有明見者。當致憑考。憲府卽以三懸鈴發送惟新。命營吏石球。持推刷文案及書目等來。【石球居惟新。故使之持來。】

주석

효주(爻周) : 문서나 장부에서 효(爻)자 모양의 부호를 그려서 지워 버리는 일. 노비[臧獲]: 장획(臧獲). 장(臧)은 사내종, 획(獲)은 계집종을 의미. 종(從), 하인(下人)을 이르는 말. 삼현령(三懸鈴) : 긴급한 문서. 조선시대에 공문을 보낼 때 긴급한 정도에 따라서 봉투에 방울을 다는데, 가장 긴급한 것은 세 개, 그 다음 긴급한 것은 두 개, 그 다음 긴급한 것은 한 개를 달았다. 때에 따라서는 동그라미를 그려서 표시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