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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550년 8월 12일 / 明宗 5 / 庚戌
날 씨 오후에 가랑비가 내리다.
내 용
도사(都事)가 또 아전을 시켜 출발을 독촉하게 하니 어쩔 수 없이 말이 끄는 교자(轎子)로 출발 하였다. 두 형님이 사나흘 동안 따라가는 일로 아버지를 모셔 가고 나는 내일 행장을 꾸려 녹양역(綠楊驛)으로 뒤따르기로 했기 때문에 뒤로 쳐졌다. 【녹양역은 양주(楊州) 땅에 있는데 서울까지의 거리가 일식정(一息程)이다.】 행차가 5리쯤 갔을 때 수레를 멈추었는데, 신기(身氣)가 더욱 나빠져서 자연즙(自然汁)에 소합원(蘇合元)을 타서 올렸다. 【최 직장(崔直長)과 황 빙군(黃聘君)은 이곳에 이르러 뒤로 쳐졌다.】 오후에 가랑비가 내렸는데, 일행이 미애리(彌崖里)에 도착하자 비의 기세가 점점 거세져서 촌가(村家)에 들어가 그대로 묵었다. 양사(兩司)가 연이어 계를 올렸지만 또 윤허하지 않으셨다. 나는 저녁에 누님과 작별하고 이어서 최 직장(崔直長)을 뵈었다.
직장(直長)이 말하기를, "들으니 행량(行糧)에 매우 차질이 생겼다고 하던데 길에서는 그래도 먹을 수 있겠지만 갑산(甲山)에 도착해서는 누가 양식을 대주는가?"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가산을 다 털어서 매매하여 겨우 몇 석의 양식과 열 필의 무명을 마련했는데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형이 뒤따라 준비해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최 직장이 말하기를 "비록 뒤따라 양식을 운반해 온다 하더라도 어찌 계속 대줄 수 있겠는가?"라고 하시면서 행구(行具)를 매우 많이 주셨다. 【이에 앞서 우리들이 본가에 남아있는 재물을 찾아 정리해보니 쌀은 두 섬이 되지 않고 무명은 열 필에 지나지 않았다. 큰 일이 당장 닥칠 것인데 쓸 물건이 매우 부족하니 마땅히 집의 재물을 팔아서 쌀과 무명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곧장 온 집안을 다 뒤져보니 팔만한 물건은 없고 채단(采緞) 세 필과 녹피(鹿皮) 한 장만 있었다. 이것을 팔면 그래도 급한 것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소란스러운 중에 갑자기 잃어버렸다. 어쩔 수가 없어서 다시 서로 의논하여 말하기를, "본가에 있는 약간의 쌀과 무명을 보는 대로 다 써버린다면 나중에는 어찌할 것인가? 아버지의 봉양은 마땅히 우리 세 집에서 하겠지만 하리(下吏)들에게 인정상 주는 잡용(雜用)은 의복으로 대신주고 본가의 물건을 전혀 쓰지 말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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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二日。
都事又使吏促發。不得已以馬轎子發行。兩兄以數三日從行事陪去。㝯以明日束裝追到綠楊驛。故落後。【綠楊驛在楊州地。去京師一息。】行至五里許稅駕。氣候益艱楚。用自然汁和蘇合元以進。【崔直長黃聘君到此落後。】午後微雨。行到彌崖里。雨勢漸密。入村家因宿。兩司連啓。又不允。㝯夕拜別姊氏。因謁崔直長。直長曰。聞其行粮甚爲齟齬云。在路則猶可食。到甲山誰其資之。對曰。傾家買賣。勤得數石之粮十匹之木。更無如之何。以是家兄隨後備來矣。直長曰。雖從後運粮。安能繼給。因惠行具甚多。【先是子等檢理本家所儲之物。米不滿二斛。木不過十匹等。以謂大事朝夕當出。而家用甚不足。宜買賣家財。以備米木。卽傾家搜閱。無可賣之物。而只有采段三匹鹿皮一令。以謂賣此則猶可以備急。騷擾之中。忽焉見失。無可奈何。又相議曰。本家數小米木。經目費用。則後將奈何。家君奉養。宜以子等三家供之。下吏人情雜用。宜以衣服代給而專不用本家之所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