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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550년 8월 10일 / 明宗 5 / 庚戌
내 용
삼성(三省)이 교좌(交坐)하였는데, 한 차례 형신을 받았다. 이치(李致)는 형을 반도 받지 않아 숨이 끊어졌다.【이치와 선군(先君)은 죄목이 비록 경중이 있으나 대동소이하였기 때문에 형신을 같이 받았는데 먼저 운명한 것은 상중(喪中)이었기 때문이다.】 승지(承旨)가 입계(入啓)하기를【이때의 공사(公事)는 형방(刑房) 승지가 모두 직접 출납하였다.】, "현감 이치는 장 아래에서 목숨이 끊어졌는데, 우윤(右尹) 이해(李瀣)는 매를 참아가며 승복하지 않으니 형신을 더 가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임금께서 특명을 내리시어 "사형에서 감면하고 시추조율(時推照律)하라."고 하시니【이는 필시 임금께서 이치의 죽음을 듣고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서 그러하신 것뿐이다.】, 삼성이 곧 그만두었다.【온 집안의 위아래가 기쁘고 감사함이 끝이 없었다. 사헌부의 서리(書吏) 박수견(朴壽堅)이 와서 "이는 곧 나리께서 다시 살아난 때이니 참으로 기쁠만합니다. 그러나 지금 들으니 양사가 입궐했다고 합니다. 함부로 경솔하게 기뻐하지 말고 천천히 그 변화 등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두렵고 겁이 나려고 하여 노복들에게 조심시키고 전파하지 말게 하였다.】 의금부는 장(杖) 100과 유(流) 3000리로 법률에 의거하여 함경도 갑산(甲山)에 배치하였다.
임금께서 다시 명을 내리시어 류섭(柳涉)에게는 형장(刑杖)을 면제하고 속전(贖錢)을 바치게 하고 전라도 모현(某縣)으로 배치하였다.【류섭은 도사(都事)로서 그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의금부가 단독으로 추문(推問)하였고 다만 한 차례 형신을 받았을 뿐이다. 다음 해에 풀려나 돌아와서 조정에 벼슬하였다.】
양사(兩司)는 다시 끝까지 추문하여 법률에 따라 죄를 정하라고 계하였다. 전지를 내려 "근래 이와 같은 일로 사람들이 많이 죽고 상하여 편치 않은 마음이 끝이 없다. 고칠 필요가 없으니 모두 허락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삼경(三更) 밤에 유지(宥旨)가 내려왔다. 종 의성(義成) 등 세 사람이 옥에 들어가 업고 나와 교자(轎子)를 수레에 모셔서 함끗치[咸末叱致]의 집에 머물렀다.【처음에는 나가면 동대문 밖의 김첨사(金僉使)의 조모댁에 의탁하려고 했으나 성문이 이미 닫혀서 그리하지 못했다.】
가군께서는 비록 변란과 누설(縲絏: 옥살이)의 액(厄)을 겪으셨으나 정신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가군을 보고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위로하고 축하하면서, "처음 전지를 봤을 때는 다시는 가망이 없을 걸로 생각했는데 뜻밖에 오늘 천은(天恩)이 이와 같이 내렸습니다."라 말하니 "대저 부침(浮沈)하는 것도 인군(人君)의 도량입니다."고 대답하셨다.
우리들이 사뢰어 아뢰기를 "여러 차례 혹형이 가해졌으니 혹시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시어 그 일죄(一罪)에 대해 거짓 승복을 하실까 이것이 두려울 뿐입니다"라 하니, "첫 번째 형신을 받았을 때는 정신이 흩어져 어지럽고, 해가 빛을 잃은 것 같았다. 다만 맞은 자리가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온 몸이 벌벌 떨려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와 같으면 여러 차례를 장차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지만 두 번째 부터는 마음을 분발하고 기운을 떨치니 혹독한 장형이 비록 내려졌지만 별로 고통이 없었다."고 하셨다.
또 "내가 처음에는 장(杖)의 횟수를 헤아리지 않았는데, 두 번째부터 마지막까지 하나하나 손을 꼽아 수를 헤아리니 마음이 아침 해와 같이 환해졌다."라고 하셨다.
가군께서 형님에게 명하시기를, 돌아가서 어머니를 찾아뵙고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고충을 살펴 위로하고 머무를 때 필요한 양식을 준비해서 겨울로 들어설 무렵을 기다렸다가 갑산으로 돌아와 보러 오라고 하시고, 나에게는 배행하게 하셨다.【선군(先君)이 의금부에 계실 때 닥쳐 올 화(禍)를 헤아리지 못하여 사람들은 모두 그를 위태롭게 여겼다. 이 도사(李都事)는 "나는 영공의 덕상(德像)을 아니, 반드시 흉하게 끝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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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十日。
三省交坐。受刑一次。李致受刑未半。殞絶。【李致與先君罪目雖有輕重。然大同小異。故同受刑次而先於殞命者。以其喪中故也。】承旨入啓曰。【此時公事刑房承旨。皆親自出納。】縣監李致。杖下殞絶。右尹李某忍杖不服。請加刑。上特命。減死。時推照律。【此必上聞李致之死。感動而然耳。】三省卽罷。【一家上下。喜感罔極。憲府書吏朴壽堅來言曰。此乃進賜主更生之時。誠可喜也。然今聞兩司詣闕云。毋妄輕喜。徐觀其變等。心甚嘉納。將恐將懼。使奴僕愼勿傳播。】禁府以杖一百流三千里照律分配于咸鏡道甲山。上再命。杖贖柳涉分配于全羅道某縣。【柳涉以都事不預其事。府獨推問而只受一次。越明年。放還。仕于朝。】兩司再以窮推依律定罪啓之。傳曰。近來如此之事。人多死傷。未安之心罔極。不須改之。皆不允。夜三更。宥旨乃下。奴義成等三人入間。奉負而出。以轎子奉輿止于咸末叱致家。【初欲出依東大門外金僉使祖母宅。而城門已閉。故未果。】家君雖經變亂縲絏之厄。精神無異平昔。凡上下見知之人。咸共慰賀曰。初見傳旨。無復可望。不圖今日天恩之至於斯也。答曰。大抵抑而揚之。亦是人君之度也。子等白曰。屢次酷刑之加。或不收拾神精。誣服其一罪之是懼耳。曰。始受初次之時。精神散亂。白日無光。非但當處之痛楚。滿身震懍。難可復忍。意以謂終始如此。則累次將何以能忍。自第二次奮志勵氣。酷杖雖下。別無苦楚。又曰。予初次不數杖。度之次第。自二次至終度。箇箇屈指計數。心如曙日。家君命兄主歸覲母主。展慰憂戀之苦。備留資之糧。俟秋冬之交。來寧于甲山。使㝯倍陪行。【先君在禁府時。禍將不測。人皆危之。李都事曰。我知令公德像。必不爲凶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