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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550년 8월 9일 / 明宗 5 / 庚戌
내 용
첫 닭이 울 때 나는 이 도사(李都事) 댁으로 갔다. 어제 저녁에 도사께서 사람을 시켜 나를 불러서는, "사람들이 모두 영공께서 불복한 것을 나에게 잘못으로 돌리며 ‘어째서 빨리 승복시키지 않는가?’라고 하는데, 나는 승복할 경우의 이로움과 해로움에 대하여 자세히 알지를 못하니 영공께 권하지를 못하겠네. 그대들의 뜻은 어떤가?"라고 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그럴 수 없습니다. 가군께서 어제부터 기력이 곤하고 피로하신데 만약 이 말을 들으시고 마음을 기울여 의혹이 생기시면 아마도 혹 견뎌내기가 힘들 것입니다. 만일 승복하신 후에 헤아리지 못한 화(禍)가 나오면 어쩌겠습니까?"
도사가 "나도 이와 같이 알기 때문에 감히 강권하지 못하네"라고 하였다. 도사가 또 "어제 유신현감(惟新縣監) 이충남(李忠男)류중영(柳仲郢)을 대신해서 본현에 제수 받았다.】이 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제가 입궐하여 들으니 모두가 하는 말이 영공이 승복하면 반드시 천은을 입을 것이라고 말합니다’고 했네. 이 말의 출처를 몰라서는 안 될 것이네."라고 하였다.
내가 "충남의 말을 어찌 믿을 수 있습니까?"라 하니, 도사가 "진실로 충남은 평소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충남권응정(權應挺)권응창(權應昌) 형제를 모함한 인물이다.】 다만 이 말이 믿을 만한 데에서 나왔는지 믿지 못할 데에서 나왔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자네가 가서 그를 만나보고 편지로 말씀하신 뜻에 감사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 말의 출처가 유래한 곳을 물어 보라."고 하였다.
나는 그러겠다고 하고 물러나 돌아와서 형님에게 말씀드리고 바로 충남의 집에 달려갔다. 손을 올려 울면서 감사드리며 "저희들이 창황한 중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어제 이 도사를 통해 가르쳐 주셔서 승복의 좋은 점을 알게 되었으니,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끝이 없습니다. 다만 승복이 좋은 이유를 알지 못해서 감히 여쭙습니다."라고 하였다.
충남이 손을 저어서 만류하며 "자네 왜 이러는가, 왜 이러는가? 나 또한 무엇을 알겠는가? 그저께 승정원(承政院)에 들어갔는데 승지 김홍윤(金弘㣧)이 그리 말하였고 또한 영상(領相)과 사간(司諫)【영상 이기(李芑)충남의 동서이며, 사간 이무강(李無彊)충남의 오촌 조카이다.】도 영공이 승복하면 오히려 목숨을 온전히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 했네."라고 하였다.
또 "내가 영공과 서로 잘 지냈는데, 지금 여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있는가?"라고 하면서 몇 줄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말이 믿지 못할 곳에서 나왔음을 듣고 또 충남의 거짓 울음을 보고 그것이 모함임을 알았다. 간담이 서늘해짐을 견딜 수 없어 즉시 물러나 형님에게 자세히 말씀드렸다.
형님은 "비록 충남의 말은 크게 믿을 수 없지만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도 승복을 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이런 말을 듣고 말씀드리지 않았다가 만약 후회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하였다. 거듭 생각해도 그 마땅함을 얻지 못했다. 이 두 조목을 써서 옥직(獄直)을 들여보내 의견을 여쭙게 하니, 가군께서 "거짓으로 승복하여 삶을 얻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데, 하물며 살기를 기필하지 못함에 있어서랴!"라고 하였다.
식후에 삼성(三省)이 교좌(交坐)하였는데, 가군께서 이미 세 차례나 형신을 받아서 기력이 쇠진하여 형세 상 더 이상 지탱할 뜻이 없게 하고 또한 마음을 달게 먹으려고 한 이후에야 그만두려고 하였다. 심문(審問)에 들어가자 추관(推官)은 곧 전지(傳旨)에 있는 내용을 공초해서 쓰고 그에게 서명을 하게 하였다. 가군께서 손수 스스로 펼쳐서 읽어보시니 모두가 일죄(一罪: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였다.
돌아보시고 고하기를, "보리금의 속기사경전(續起私耕田)을 환급한 일과 부서지고 자질구레한 잡물을 효주(爻周)한 두 가지 일은 신이 잘못 헤아린 것이니, 스스로 지은 재앙은 만 번 죽어도 달게 받겠지만 임금을 잊고 역적을 비호한 것, 구수담(具壽聃)과 붕비가 된 것, 고변인을 때려죽인 것, 연좌인(緣坐人)을 기록하지 않은 것 등은 신이 범한 죄가 아니니 어찌 거짓으로 승복하겠습니까? 다만 형장(刑杖)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승복하려고 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거부하고 수결(手決)하지 않으시니 마침내 형신을 한 차례 받으셨다.
그저께 가군께서 친히 옥중 상소를 지으시고 옥직을 시켜 우리들에게 보이게 하셨다. 우리들은 보고 난 뒤에 수서(手書)를 첩리(貼裏) 아랫단에 넣어서 돌려보냈다. 지금에 이르러 품속에서 꺼내시어 여러 번 올리기를 원했으나 추관들은 끝내 처리하지 않았다.【을사사화(乙巳士禍)부터 추관이 죄인을 비호하다가 도리어 화를 당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추관들이 장형(杖刑)을 더 가하기를 청하였다. 전지에 "내일을 기다렸다가 하는 게 옳다."고 하였다.
아침에 상소를 당직(當直)에게 올렸는데, 직랑(直郞)이 즉시 승정원으로 보냈으나 마침 자리를 비워 받지 않았다. 직랑이 의금부로 이송을 했으나 본부에서도 물리쳤다.
저녁에 형님과 내가 가서 이사성(李師聖)사성이치(李致)의 아들로 정자(正字)이다.】을 만났다. 사성이 "사람들이 영공께서 승복하셨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렇습니까?"라고 하니, 형님이 "가군께서 오늘 기운이 더 이상 참기 어려웠기 때문에 저들은 죄 중에 가벼운 것은 승복하시라고 말씀드렸으나 끝내 승복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하였다.
사성은 "승복하게 하는 것은 말할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이때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승복을 권한 것은 진실로 마땅하지만 친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도 혹 권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는 반드시 일의 경중을 몰라서 그러한 것이다. 상소문은 옥중에서 유실되었기 때문에 여기에 기록할 수가 없으나 대강의 내용은 원정(元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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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九日。
鷄初鳴。㝯往李都事宅。昨昏。都事使人要㝯。都事曰。人皆以令公之不伏歸咎於我曰。何不使之速服乎。我則未詳其承服之利害。不可勸於令公。於君等之意如何。㝯對曰。不可。家君自昨。氣力困憊。若聞是言而傾心疑惑。則恐或難於勉忍也。若承服之後。禍出不測。奈何。都事曰。我亦知如是。故不敢强勸。都事又曰。昨。惟新縣監李忠男【代柳仲郢除授本縣】。惠書於我曰。僕入闕聞之。皆言令公承服。則必蒙天恩云云。此言之出處不可不知。㝯曰。忠男之言。何可信也。都事曰。固知忠男之素不信者。【忠男。搆陷權應挺應昌昆季之人也。】但欲知此言之出於信不信之處而已。君第往觀之。謝示喩之意。因問言根之所自出。㝯惟惟而退。還報于兄主。卽馳詣忠男之家。上手泣謝曰。某等蒼皇之中。罔知所措。昨憑示喩於李都事。乃知承服之善。感佩無極。但未知承服爲善之由。故敢問。忠男以手揮而止之。君何如是耶。何如是耶。吾亦何知。昨昨入政院。承旨金弘胤言之。而且領相及司諫【領相李芑。忠男之同壻。司諫李無彊。忠男之五寸侄。】。亦言令公承服。則猶可以生全云。又曰。我與令公相善。而今至於斯。安有如此。因泣數行下。㝯聞言之出於不信。而見忠男之詐泣。知其謀陷。不勝寒膽。卽退。具報于兄主。兄主曰。雖忠男之言。大不可信。親信之人亦有勸之者。子等聞此不達。而若有後悔。則奈何。反覆思之。未得其宜。書此兩條。使獄直入送取稟。家君曰。誣服而得生。我欲不爲。況未必生乎。食後三省交坐。家君旣受三次。氣力頓悴。勢未能復支意。且以爲必欲甘心而後已。至於臨訊。推官卽以傳旨內辭緣書供。使之着署。家君手自披閱。皆是一罪。回告曰。甫里金續起私耕田還給及破碎雜物爻周兩事。臣所錯料。自孼萬死是甘。至如忘君護賊。壽聃朋比。告變人撲殺。緣坐人不錄等。非臣之所犯。豈可誣服。但以不能忍杖。故欲服耳。拒而不狎。遂受一次。昨昨日。家君親製獄中上疏。使獄直示子等。見後還入送手書于貼裏下幅。至是出自懷中。願呈再三。推官竟不受理。【自乙巳之禍。推官庇護罪人。反遭其禍者衆。故也。】推官請加刑。傳曰。待明日爲之可也。朝呈上言于當直。直郞卽送政院。而適以位不齊不受。直郞又移送于本府。本府亦退。昏兄主及㝯往見李師聖。【師聖。李致子。正字也。】師聖曰。人言令公承服云。果否。兄主曰。家君今日氣候。難於復忍。故渠等稟以罪之輕者而服之矣。竟不服。師聖曰。伏之則不可說也。【是時。不信之人則勸之承服。固其宜也。而親信之人亦或有勸之者。此必不知事之輕重而然也。上疏遺失於獄中。故不得記焉。大綱與元情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