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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10+KSM-WM.1550.4717-20180630.000000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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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550년 8월 8일 / 明宗 5 / 庚戌
내 용
장형을 한 차례 더 받았고 또 가형(加刑)을 청했다. 임금께서 특별히 "시추조율[時推照律, 법률에 따라 죄를 적용하는 것]"에 따르라고 명하시니, 추관(推官)이 임금의 전지와 다른 의견으로 아뢰기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시추조율’하는 일은 전에 없었던 일입니다."고 하였다. 전지가 내리기를 "그렇다면 내일까지 기다려라."고 했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길, "삼성교좌할 경우 하루에 형신(刑訊)이 두 세 차례 이르는데, 영공(令公)에게는 그렇지 않으니, 이는 기쁠만하다."고 했다.】 이때 바깥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어떤 사람은 "승복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승복하면 장차 예상치도 못할 일이 일어날 수가 있다."고 하였다. 사람들 모두가 말이 다르니 마땅히 따를 곳이 없었다. 이날에 형님이 수각교(水閣橋)로 돌아가 이 도사(李道事), 최 직장(崔直長)과 더불어 승복의 이해득실에 대해 의논했으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돌아왔다.
도사(都事)가 초하여 올린 상소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륙을 받고 의금부에 투옥된 이 모[이해(李瀣)]의 아들 유학 이영(李寗)은 삼가 아룁니다. 신의 아비는 한미한 가문의 시골 선비로 과분한 국은(國恩)을 입어 여러 임금을 모신지 이미 20여년이고, 2품의 관직에 올랐습니다. 영광과 총애가 극에 달하여 언제나 만분의 일이라도 은혜에 보답하려했는데 청홍도 관찰사를 지낼 때 본의가 아니라 실수와 착오로 지은 죄로 무거운 형벌을 받은 나머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어 부자간의 정(情)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망극합니다. 옛날 제영(緹縈)이 아버지의 죄를 대신한 것을 본받고자 우러러 호소하오나 길이 없어서 더욱 슬프고 답답했습니다. 신의 아비가 유신(維新) 역당의 전민을 환급하였다하나 노비는 거론된 적이 없거니와 전(田)도 까닭 없이 함부로 내준 것이 아니라 연풍 현감(延豊縣監)이 보고한 것에 모모자(某某字) 전(田)은 역적 정랑의 비부(婢夫) 보리금(甫里金) 등의 속기전(贖起田)이라는 첩보에 근거하여 그 주인에게 환급한 것입니다. 재물을 효주한 것은 자질구레한 물건으로 요긴하지 않다고 망령되게 생각했을 뿐이고 본 주인에게 환급한 것은 아닙니다. 역적 최대수(崔大受) 등과 연좌된 사람을 기록하지 않은 일은 【역적 등의 처와 자식을 노비로 할 때 형조(刑曹) 내부의 지침(關字)에는 처, 자녀, 손자녀 등을 아울러 노비로 한다고 되어있으나 후에 개정된 지침에는 손자녀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했으므로 그 손자녀들은 기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추문(推問)할 때 연좌인으로 기록하지 않은 것을 물으니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모르겠다.】 신의 아비는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오며 고변인(告變人)을 형신한 일도 유신 현감의 보고에 도망한 사민 최하손(崔賀孫)이 도망하여 본가로 돌아왔다는 이유로 추문(推問)하겠다고 청하여서 드디어 법에 따라 일차 형문(刑問)하라고 회송하였습니다. 후에 다시 첩보한 것에 동 최하손이 관계도 없는 향중의 회문을 들고 중형을 모면하려고 고변한다며 공초(供招)를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신의 아비가 바쁜 중에 처음에는 관계없는 일이라 하며 사민(徙民)이 도망한 죄를 면하려고 꾸미는 게 분명하다고 망령되게 판단하여 급하게 형신(刑訊)을 허락한 것이지 때려죽인 일은 신의 아비가 모르는 일입니다.
신의 아비를 죄인 구수담(具壽聃)과 서로 붕비(朋比)라 하시는데, 신의 아비는 성품이 본래 세상일에 어두워 벼슬길에 나온 이후 관아(官衙)의 일 외에는 일찍이 명함을 넣고 찾아다닌 적이 없음은 여러 사람들이 모두 압니다. 뿐만 아니라 정미년(丁未年, 1547년) 이후 양 도의 관찰사로 나가 있었기 때문에 한양에 머물었던 날이 아주 적었으므로 구수담과 논의하고 행사하는 것을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하심은 극히 애매하신 말씀입니다. 신의 아비가 비록 공적이 없을지라도 영남 지방에 세거해 온 사람으로 역당(逆黨)의 멀고 가까운 족속과는 전혀 무관한 사이인데다가 근고에 없는 역적은 비록 가까운 지친(至親)이라도 비호(庇護)해서는 안 되는데 감히 사사로이 인정을 쓸 리가 만무합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 일호(一毫)라도 사사로운 감정이 있었다면 처음에 재물을 효주(爻周)한 치부책을 공연히 그대로 두지 않았을 것이니 망령되게 잘못 생각하였다는 것은 여기에서 더욱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하물며 신의 아비는 본도[本道 청홍도]에 있을 때 유신현으로 가는 길에 지은 율시(律詩) 제 1수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형승천년국(形勝千年國) 풍광이 천년의 나라
의관족성향(衣冠族姓鄕) 사대부 집안이 사는 고을
음모방소취(陰謀方嘯聚) 음모를 꾸며 사람을 모으니
축얼구포장(蓄孼久包藏) 흉악함을 품고 오래 감추었네
천토나능환(天討那能逭) 하늘의 처벌은 어찌 피하리
신앙지자장(身殃祗自將) 몸에 닥친 재앙은 스스로 불렀으니
금탄만곡수(金灘萬斛水) 금탄의 가득한 물
유악여동장(流惡與同長) 악을 씻으며 길이 흐르리
제 2수에서는 다음과 같이 읊었습니다.
토지분할속(土地分割屬) 토지를 나누어 가지고
산천폭열강(山川幅裂疆) 산천을 찢어 경계 지으니
인민소공분(人民所公憤) 백성들이 함께 공분하고
초목역회상(草木亦懷傷) 초목도 또한 슬픔을 머금었네
불음도천수(不飮盜泉水)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고
회거승모향(回車勝母鄕) 승모 마을에는 수레를 돌린다네
흉허금재안(凶墟今在眼) 흉흉한 터가 지금도 눈앞에 보이니
아마향하방(我馬向何方) 나의 말을 어디로 돌릴 것인가?
2수(首)도 평생 마음속에 두고 있는 생각을 기행록(記行錄) 한 책(一冊)에 분명하게 손으로 썼기에 그 책을 특별히 올리니, 임금께서 보시면 분명히 신의 아버지의 충정(衷情)이 밝혀질 것입니다.
신의 아비가 본도에 있던 가을쯤에 여러 병이 다 생겨서 여러 차례 정사(呈辭) 하였으나 윤허를 얻지 못하여 애써 힘을 다해 일한 나머지 정신이 지쳐서 반드시 공사(公事)에 착오가 많을 것이니 만 번 죽여도 달게 받을 일이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성군의 밝은 통치아래에서 신의 아비보다 죄가 더 중한 사람들도 모두 너그러운 은전(恩典)을 입고 있는데 신의 아비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지은 죄 때문에 여러 차례 장형(杖刑)을 받아서 실오라기 같은 생명이 반드시 장형을 받고 죽을 것입니다. 홀로 천은(天恩)을 입지 못할까봐 부자간의 슬프고 답답한 정(情)이 망극하옵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간(分揀)하여 원통함을 풀어 주기 위하여 자세하게 아뢰니 제발 바라옵니다. 삼가 모년 모월 모일에 올립니다.
○가군께서 기후(氣候)에 조금의 번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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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八日。
又受一次。又請加刑。上特命時推照律。推官防啓曰。一罪之人。時推照律。古無其例。傳曰。然則待明日。人皆曰。三省交坐。則一日之內。刑訊至二三次。而於令公。則不然。是可喜也。是時。外議紛紜。或言承服。則可以生全。或言承服。則事將不測。人皆異口。莫適所從。此日。兄主歸水閣橋。與李都事崔直長。相議承服利害。不決而還。都事草上言曰。刑戮及事義禁府囚人李某子幼學李甯。右謹啓。臣矣段臣父亦寒門草士。以濫蒙國恩。侍從累朝。今已二十餘年。職至二品。榮寵俱極。常懷圖報萬一爲白如乎節。淸洪道觀察使時。無情失誤之罪。以已受重刑餘。命只在頃刻。父子之情。到天罔極。欲效緹縈之代。仰訢〖訴〗無路。尤于痛憫爲白置。臣父乙。惟〖維〗新逆黨田民還給是如爲白良置。奴婢段。擧論處無白在果。 田庫段置。無端擅給爲白乎所不喩。延豊縣監所報內。某某字田段。逆賊呈琅婢夫甫里金等矣贖起田是如。牒報據還給其主爲乎事是白齊。財物爻周事段。細瑣之物乙。不緊爲去。妄料叱分是白遣。還給本主爲乎所不喩是白齊。逆賊崔大受等緣坐人。不錄事段。【逆賊等妻子爲奴時。刑曹關內云。妻子女孫等幷爲奴。而後改關字。不及孫。故不錄其孫。而推問之時。以緣坐人。不錄爲問。不知何所據而云也。】 臣父亦專亦知不得爲乎事是白乎旀。告變人。刑訊事段。維新縣監所報內。徙民逃亡崔賀孫乙。逃來本家情由。推問爲良結。請報導良。依法刑問一次回下。後更報內。同崔賀孫亦不干鄕中回文持是旀。謀免重罪。告變爲良結。拒招是如云云爲白有去乙。臣父亦多事之中。初亦不干是如爲旀。徙民逃亡。以免罪設計丁寧爲去。妄料遽許刑訊爲乎事是白遣。撲殺事段。臣父知不得事是白齊。臣父乙。罪人具壽聃果。相爲朋比是如爲白良置。臣父亦性本疎迂。出身以後。衙仕外。未嘗投名尋訪爲白臥乎。衆所共知叱分不喩。自丁未年後。以出使兩道。在京日月甚少爲白去等。具壽聃果。論議行事。無不與同爲白乎所。極爲曖昧爲白齊。臣父亦必于無狀爲白良置。世居嶺表人。以逆黨人果。遠近族屬。專亦不干爲白去等。近古所無逆賊乙。雖至親間是白良置。庇護不得事良中。敢用行私情理萬無叱分不喩。萬一一毫是乃。私情所在爲白在如中。初亦財物爻周置簿冊乙。空然在置爲乎所不喩是白去等。妄量錯料爲白乎所。尤于判然於此爲白齊。況旀臣父在本道時。維新道中。所製律詩第一首云。形勝千年國。衣冠族姓鄕。陰謀方嘯聚。蓄孼久包藏。天討那能逭。身殃祗自將。金灘萬斛水。流惡與同長。第二首云。土地分割屬。山川幅裂疆。人民所共憤。草木亦懷傷。不飮盜泉水。回車勝母鄕。凶墟今在眼。我馬向何方。幷以二首段置。平生素志是白乎等用良。記行錄一冊內。分明手書爲白有去乎。同冊乙。特垂。睿鑑。庶明臣父之衷情是白齊。臣父在本道秋節分。百病具發。累次呈辭爲白乎矣。未蒙允兪。勉强驅馳之餘。精神暗耗。處置公事。錯誤必多。萬死甘受是白在果。今如聖明之下。凡罪之有重於臣父者。咸被寬典是白去乙。臣父段。實爲無情之失。以數多加刑爲白乎。第亦中如縷之命。必殞於杖下。獨未蒙天恩爲白乎去。父子之間。痛憫罔極爲白良旀。右良辭緣。分揀解冤爲白只爲。銓次以善啓。濟拔向敎是事望良白內臥乎事是亦在。謹啓年月日 ○家君氣候。稍有煩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