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경술일기(庚戌日記) > 01권 > 1550년 > 8월 > 4일

경술일기(庚戌日記)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WM.1550.4717-20180630.000000000001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550년 8월 4일 / 明宗 5 / 庚戌
내 용
금부당상(禁府堂上)인 판부사(判府事) 윤개(尹漑), 지사(知事) 박수량(朴守良), 윤원형(尹元衡), 동지사(同知事) 심광언(沈光彦) 등이 출근해서 집무를 시작하여 원정(元情)을 진술하였다. 【나중에 진술하는 원정과 같으므로 여기에는 기록하지 않는다.】 저녁에 양사가 또 논계(論啓)하였다. 【전지(傳旨)와 내용이 같으므로 기록하지 않는다.】
전지(傳旨)에 이르기를, "우윤 이모는 근래 인심이 안정되지 않고 사론(邪論)이 사그라지지 않았는데 비록 재상의 반열에 있는 자이나 임금을 잊고 역적을 보호하기를 거리낌 없이 하였다. 그리고 늘 구수담(具壽聃)과 더불어 붕당을 이루어 그 의론과 행사를 같이 하지 않음이 없으니 시비를 전도시키고 인심을 어그러지게 한 것은 원래 그 뿌리가 유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유신현(惟新縣) 역적들이 대역(大逆)의 모의를 거행하려 해서 천 여명을 모았을 때, 그 무리의 최대수(崔大受)도 성명을 문서에 나열해서 회문(回文)을 내어서 서로 알렸는데, 사건이 발각되어 복주(伏誅)되었다. 그 해 가을에 어떤 사람이 그 회문을 얻어 고변하려고 한양으로 오던 중에 회문의 명부에 적힌 사람의 자제가 길에서 한양으로 오던 자를 잡아서 이치(李致)에게 고소하였다. 이치도 첩보하니 즉시 명령을 내려 형추(刑推)로 멸적하게 하였다. 무릇 고변하는 사람이 비록 있더라도 보통의 신하가 감히 가볍게 저지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유신현의 역적은 전고(前古)에 드물어 사람마다 함께 통분하는 바이고 소위 회문은 이미 역적의 공초(供招)에 드러나서 관계되는 것이 매우 중대하다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알 수 있거늘 이미 그것을 막아서 위로 올리지 못하게 하고 장살(杖殺)에 이르게 한 것은 군신의 의리를 모르는 것이다. 신자(臣子)가 되어 차마 역적을 비호하여 그 마음 씀이 흉특하여 역적과 다름이 없으니 지극히 한심하므로 전에 내려온 전지의 내용을 아울러 궁추(窮推)하라. 사헌부는 청홍도에 가져온 문서라도 빙열(憑閱)해서 궁추하여 정죄하도록 의금부에 하달하라."라고 하였다.
○양사는 전 청홍도사(淸洪都事) 류섭(柳涉)과 전 유신현감(維新縣監) 이치(李致) 등을 모두 하옥하여 궁추하도록 계청하였다. 류섭은 명을 듣자 죄를 받으러 나왔고 이치는 모친상으로 장단(長湍)에서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즉시 도사에게 명하여 잡아왔다. 청홍감사(淸洪監事) 김광진(金光軫)과 유신현감(維新縣監) 류중영(柳仲郢)은 모두 문서를 즉시 송달하지 않은 일로 파직되었다.
○저물녘에 우리들은 양사가 계청한 일로 문틈을 통하여 직접 뵈려하였으나 부중에 일이 많고 소란하여 할 수 없었다.

이미지

원문

初四日。
禁府堂上判府事尹漑知事朴守良尹元衡同知事沈光彦等坐起陳元情。【與後陳元情同。故不錄於此。】夕。兩司又論啓。【與傳旨同。故不錄。】 傳旨云。右尹李某。當爲近來人心不靖。邪論不殄。雖在宰相之列者。忘君護賊。無所忌憚爲置。常與具壽聃相爲朋比。其議論行事。無不與同。使是非顚倒。人心携貳。原其根柢。有自來矣叱分不喩。惟新逆賊等欲擧大逆謀。聚千餘人。其黨崔大受亦列書姓名。出回文知會。事覺伏誅。後其年秋。有人得其回文。將告變來京次。回文中名付人子弟路捕來京者。告訢于李致。致亦牒報。卽令刑推滅迹。凡告變之人。雖在尋常臣子所不敢經止是去等。況旀惟新逆賊段。前古罕有。人人所共痛憤。而所謂回文已現於逆賊之招。所關極爲重大。愚夫亦當知之是去乙。旣已沮遏。使不得上達。以致杖斃爲乎所。不知君臣之義。爲人臣子而忍護逆賊。其用心兇慝。與逆賊無異。至爲寒心爲昆。前下傳旨內辭緣。幷以窮推爲乎矣。司憲府以淸洪道取來文書乙良置。憑閱推鞠定罪爲只爲。下義禁府爲良如敎。○兩司啓請以前淸洪都事柳涉及前惟新縣監李致等幷下獄窮推。柳涉聞命就繫。李致以母喪居廬于長湍地。卽命都事拿來。淸洪監司金光軫及惟新縣監柳仲郢。皆以文書未卽上送事罷。○昏子等以兩司所啓事。欲親省于門隙。而府中多事擾擾。未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