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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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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1년 1월 15일 / 高宗 8 / 辛未
내 용
상원일(上元日)이다. 고을에서 명절이라고 흥겹게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집집마다 새벽밥을 짓고 횃불자루를 묶어서 달을 기다렸다. 날이 저물자 온 거리에 선비와 아낙네들이 다투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니, 기상을 점 칠만 했다. 인환(麟煥)을 보니, 의관을 갖추었기에 어디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풍속으로 백설기를 진설하고 찬과를 갖추어 중정(中庭)에서 달을 맞이하는데, 이미 달도 떠올라 절하고 달을 맞이하는데 급합니다."라고 고했다. 남쪽 지역에는 없는 바이나 또한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배우는 사람이 새로 나온 달에게 절한다는 구절이 또한 예전부터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주관(主官)이 갑자기 왔는데, 마침 책상 위의 도구가 거두어지지 않았다. 수령이 앉자마자 "이 무슨 모양입니까?"라고 했다. 먼저 『심경(心經)』을 들고 놀라며 말하길, "『심경』이네!"라고 했다. 또 호집(湖輯)을 펴서 도체(道體)와 위학(爲學) 등의 제목을 보고 손을 움츠리고 말하길, "경외할만합니다. 이 무슨 편목(篇目)입니까?"라고 했다. 인환을 보고 웃으며,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쳤다."라고 했고, 또 나를 놀리길, "노형(老兄)이 남의 자식을 잘못 가르쳤습니다."라고 했다. 다시 옷깃을 여미며, "영남의 이런 문자는 어찌 국가의 근본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을 읽었기 때문에 이런 유배의 행차가 있었으니, 진실로 탄식할만합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미 들어오지 않을 것으로 작정을 하여 내 마음이 매우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필부(匹夫)의 뜻은 빼앗기 어려우니 내가 하는 수 없이 나와서 뵈러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달빛아래 거닐기가 좋으니, 함께 다리 근처로 나가 회포를 풀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귀양 온 처지에 너무 사치스러워 사양하고, 또 크게 한탄하면서도 그를 매우 우활하게 여겼다. 밤이 깊어 들어와서 말하길, "나는 이미 나왔으니, 잠시 다리를 밟고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오래되지 않아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막 잠을 자려고 할 즈음 관의 계집종이 문을 두드려 약밥과 국수와 과일 상을 보내왔다. 조금 맛보고는 주노(主老)를 불러 주면서 내주(內主)와 함께 먹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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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五日。
上元也。邑中見以令節。大有興設。家家晨炊。爭束炬柄。以待月。及暮坐聞通街士女競出之聲。可占氣象。麟煥見具衣冠。問何之。則告以風俗。設白糕及具饌果。迎■(月)於中庭。故見已設陳。而月亦上矣。方急於拜迎矣云云。南■(中)所無。而似亦爲美事。始知學人拜新月之句。亦古有是事耳。主官忽出來。適案具未撤。才坐曰。此何象。先擧心經。大驚曰。心經。又舒湖輯。見內衣道體爲學等題目。便縮手曰。可畏哉。是何等篇目也。笑謂麟煥曰。吾誤指授汝矣。又戲余。老兄誤人子矣。更正襟曰。嶺南此等文字。豈非國家之本耶。以讀此之故。有此之行。誠可嘆云云。因曰旣以不入來酌定。甚未便。而匹夫之志難奪。則吾不得不進謁。然今夜。正好踏月。可偕出橋頭暢敍否。以過奢於處匪之跡。辭之。又大恨嘆甚迂之。夜深。入去曰。吾則旣出矣。將暫間踏橋而去云云。不久聞入去之聲矣。方就寢之際。官婢叩門。以藥飯及麵湯果床。見餽。小嘗之。召給主老。使持去。共食於內主。爲渠言。莫知實。而共笑矣。惜別暫坐路傍石叢上。遂作別而行。景能又不能遽辭歸。隨行至水鐵橋。其大人必令歸去。使之留白洞。明早發還。悵念殊切。前行聞昨宿此店。早發。踰嶺云耳。步踰竹嶺。往年曾一行過。而峻險若初見艱關。費日下嶺。未半。日已過午。餵馬鷹巖店。行十里。到長林。先行已定館止待。餘力。猶可必進。而怕窘。仍留宿。自鷹巖店入。已見常平錢爲希寶。要得換利。不許。來見此留諸行。已受主女困懇。方患難堪。夜又來乞。而慮前路更如何。牢不施許。末乃怨恚不止。二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