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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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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1년 1월 10일 / 高宗 8 / 辛未
내 용
금성(金城)의 가마꾼이 돌아오는 길에 들려 중현(仲賢)의 편지를 받았다. 편안하게 도착했고 탈이 없다고 하니 다행스러웠으나 우선 거정(居停)되지 않고 여점(旅店)에 머물고 있었고, 주쉬(主倅)는 회양(淮陽)과 겸관(兼官)이어서 회양에 들어가 돌아오지 않아 배장(配狀)을 낼 수 없다고 하니 몹시 고민되고 고민되었다. 여기에서 경팽(京伻)을 보내는 일은 미루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마다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니 탄식스러웠다. 본향(本鄕)에서 회이(回移: 이문(移文)을 돌리는 것)는 형방(刑房)에서 문보(文報)하는 관례가 있었으므로 가마꾼이 제때에 돌아가니 가서(家書)를 부쳐 보내고 이 읍에 회이(回移)할 수 있었으나 언제 입달(入達)할 수 있을지 몰랐다. 가마꾼도 천릿길을 함께 고생한 정이 있어 이별을 아룀에 처연한 기색이 있으니 사랑스러워 1전을 내어 주며 술값에 보태게 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 비로소 주인의 책상을 빌리고 상자 속의 책들을 정돈했고 또 나무 상자 한 개를 빌려 행장에 수반 되었던 모두를 넣어 잠가두었다. 마구간이 있어 말을 세울 수 있었고, 또 내가 거처하는 방 아래에는 주고(主雇)가 거처하는 방이 있었으며 석노(石奴)도 편적(便適)했다. 곧 객지에서 일가(一家)의 재산을 갖추었으니 쓰일 경비가 적지 않아 걱정하는 실마리가 없을 수 없었을 뿐이었다. 인환은 수업을 받았는데 사뭇 들은 것을 이해했으며 매일 글자 쓰는 것에는 정도가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에 율시 1수를 읊었는데 전부터 해오던 과업이었으므로 매번 운을 불러 줄 것을 청했다. 지은 뒤에는 또 고감(考監)을 청했다. 본디 음(音)을 아는 사람이 아니니 어찌 고시(考試)할 수 있겠는가. 부끄러울 만 했다. 그러나 종일 독서하는 소리가 옆에 있으니 크게 객지살이에 각성하는 바탕이 되었고 또 소리 내어 읽고 외는 일이 있어 그 속에 구분 없이 석이니 숨어 지내는 행복이 되었다. 이날부터 소책자를 갖추어 한양 행차와 그 이래의 이력을 추기(追記)했으나 본시 총명함이 짧고, 또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 다 거두지 못하고 빠진 것이 많은 것 같았다. 혹 순서를 잃은 것도 있었고 문장도 말이 될 수 없었으니 가탄스러웠다. 밤에 주관이 나와 수작하며 병산유생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들을 만한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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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十日。
金城轎軍。歸路歷入。見仲賢書。知安抵無頉。可幸。而姑未居停。寄在旅店。且主倅。以淮陽兼官。入淮陽未返。到配狀不得出。大悶大悶。自此送京伻之事。不得不退待。然事事不遭順。可嘆。本鄕回移。自刑房有文報例。故轎軍得趁歸。付送家書及此邑回移。未知何日可入達。轎軍亦千里同苦之情。呈別有悽悵之色。可愛。出給一戔錢。使助酒料。午後。始借主人書案。整頓篋中冊子。又借木匱一坐。俱收行裝所隨。藏鎖之。有廐立馬。又吾所居室下。有主雇居處之房。石奴亦便適。卽具一家産於客地。所費不少。不能無惱心之端耳。麟煥授課。頗解聽。每日寫字有程。夕後吟律一首。乃其由前恒課。每請呼韻。做後。又請考監。本不解音之人。何能考試耶。可愧。但終日在讀書聲邊。大爲旅居喚惺之資。且或有聲誦之事。雜在其中不辨。亦爲鞱藏之幸。自是日具小冊字。追記京行及此來程曆。而本短聰明。又被困憊神息。不收似多漏。或失次。文又不能成語。可嘆。夜主官出來酬酢。洽知屛儒情狀。語多可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