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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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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1년 1월 8일 / 高宗 8 / 辛未
내 용
장언(章彦)과 중현(仲賢)이 모두 늦게 출발하여 내가 객관을 정하는 것을 보고 가려했으나 도부(到付)가 너무 늦을까 염려되었다. 장언은 앞으로갈 길이 또 백여 리를 넘으니 떠나 갈 것을 권하며 "걱정하지 말라. 내가 어찌 스스로 하는 지모가 없겠는가?"라고 했다. 식후에 두 사람과 헤어지니 이별의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에 행장을 꾸려 관문 밖 여점(旅店)으로 들어가 좌정하고, 노비로 하여금 형리를 부르니 오지 않고 이르기를 "너희 양반들이 배문(配文)을 들고 들어오라"고 운운했다. 떠돌며 처소를 의탁하는 유배자로서 보니 또한 이상할 것도 없을 뿐이다. 다시 종으로 하여금 가서 불러오게 하며 "내 비록 정배된 나그네일 지라도 가히 앉아 금화 서리를 볼 수 있다."고 하자 한 서리가 마침내 나와 배문(配文)을 내어주고 그에게 곧장 관가에 아뢰도록 하고, 정배된 사람을 부처하는 예를 갖추어 물으니 민가 중에 조금 넉넉한 자를 가려서 부처하는데, 읍내는 모두 관속들이라 매번 역촌(驛村)으로 나갔다고 했다. 역촌은 바로 은계(銀溪)로 같은 읍에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인하여 그로 하여금 들어가 고과(告課)하고 우선 머물 곳을 정하고 와서 아뢰게 했으나 한참이 지나도 아뢰지 않았다. 관(官)에서 창운(昌雲)을 불러 누구를 아는지 자세히 물었다.
읍중의 수교(首校)의 집으로 숙소를 정했는데, 관례를 버리고 한 것이었다. 주인이 알현하러 와서 자기 집으로 가자고 청했다. 도착하니 방실이 깨끗하고 따뜻하며 또 사뭇 넉넉하게 사는 자였다. 성명을 물으니 고시항(高時恒)이라 했다. 그리고 풍채와 골격에 군인 같은 모습이 있었다. 금을 걸고 비단을 둘렀으며 거지가 공손하고 성실했으나 보기에 남방 풍습의 순박함과는 판이했다. 그의 아들 인환(麟煥)은 나이 19세로 근학(勤學)하여 당시 서전(書傳)을 읽고 있었으나 혼자서 언해로 주(註)를 헤아리고 해독할 수 있어 사랑스러웠다. 주인이 이르기를 "관가에서 분부한 것 외에 천한 자식에게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면 받들어 이바지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니 그 정성이 또한 가상했다. 낮부터 저녁까지 이바지한 것이 너무 풍성했다. 편치 않은 외에 갚아야 하는 일 때문에 어찌 걱정스럽지 않겠는가. 밤에 주인을 불러 이바지하는 일을 줄이라고 갖추어 말했으나 웃으며 믿지 않았다. 대저 관의 너그러운 대접에서 주인은 귀객(貴客)이 유배되어 왔음을 알게 되니 더욱 부끄럽고 한스러운 바가 되었다. 인환이 등불아래서 율시 1수를 읊어 올리며 가르침을 청했는데, 사뭇 체격(體格)과 의미를 이해하고 있으니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정겨운 생각이 들게 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 주관(主官)이 수교(首校)에게 전갈하여 들어오게 했다. 종적이 편치 않다는 것으로 말하고 감히 사양하여 답해 보내기를 두세 번 했으나 그치지 않았다. 부득이 잠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고 이렇게 액운을 만난 것을 탄식하며 이어서 "갑자년에 잠시 본 뒤로 오늘에야 비로소 다시 보게 되어 기쁘고 위안됨을 말할 수 없습니다."고 했다. 나는 "이번 행차는 이런 방에 들어가 앉아 있을 행차가 아닙니다. 마음이 절로 편하지 않으니 나가고자 합니다."고 하자 구지 만류하며 "죄인인가요? 정배되었을 뿐으로 어찌 금강산을 서로 찾는 것과 다르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잠시 수작하고 만류를 떨치고 나오니 웃으며 "고을이 예스럽습니다."라고 했고, 출문하여 기둥 사이에 이르러 전송하며 "왕래하며 상종하면 매우 좋겠습니다."고하여 "나는 다시 이 문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주관 또한 어찌 굽혀 오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웃으며 "비록 거절하시더라도, 나는 자주 찾아가 이야기 하겠습니다."고 운운하니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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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八日。
章彦仲賢俱欲遲發見吾定館而去。而念到付過遲。如章彦前去。又過百餘里。勸之發去曰。勿慮。吾也豈無自爲之謀耶。食後別送兩人。別悵不可言。因戒裝。入官門外旅店。坐定。使奴子。招刑吏。則不來曰。汝兩班持配文入來云云。視以傳次寄處之謫人。亦無怪耳。更使奴子往招曰。吾雖正配客。可坐見金化吏。則一吏始出來。出給配文。使之卽告官家。俱問正配人付處之例。則謂擇民家稍饒者。付處邑內。則皆官屬。故每出驛村云。驛村乃銀溪便同邑中故耳。因使之入去告課先定所館。來告而移時無皂白。自官招昌雲。詳問知誰。定館於邑中首校家。蓋拔例爲之者也。主人來現。請往其家。至則房室靜溫。又頗饒居者也。問姓名。則曰高時恒。而風采骨格。有軍相風。懸金帶緋。擧止恭謹。視南土風習淳薄判異。其子麟煥。年十九。勤學。方讀書傳。而能自以諺解。考註解讀。可愛。主人言。官家分付之外。若得敎授賤息。則不殫奉供之勞云。其誠又可尙。自午供及夕。太盛豊。不安之外。爲費報之事。豈非可患耶。夜間招主人。備言減供之事。則笑而不信。蓋自官款接。主人知爲貴客來謫。尤所愧吝。麟煥於燈下。吟呈一律求敎。頗已解體格意味。又令人有情念耳。午後。主官使首校傳喝入來。辭以踪跡所不安敢辭以答送。至再至三。而不止。不得已暫入敍話。嘆其厄會。因言甲子暫見之後。今始再見。欣慰不可言。余曰。此行非入坐此室之行。心自不安。欲出來。固挽曰。罪人乎。只正配云耳。何異於金剛路相訪耶。少間酬酢。因拂挽起出。笑曰。鄕古耳。出門送至榲間曰。往來相從。甚好。余曰。吾則更不可入此門。主官又豈可枉屈耶。笑曰。雖拒絶之。吾則數數進敍云云。可感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