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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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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1년 1월 7일 / 高宗 8 / 辛未
내 용
퇴곡(退谷)을 출발하여 10리를 가서 사방교(四方郊)에 이르렀다. 바로 금성(金城)김화(金化)의 분기점인데, 중현(仲賢)은 처음에 정로(正路)를 취해 곧장 가고자 했으나 이별에 임하여 또 갑자기 헤어질 수 없어 차라리 30리를 돌아가더라도 밤에 같이 거처하기 위해 마침내 김화로 가는 길을 취하여 함께 갔다. 마현령(馬峴嶺)을 넘었는데, 이 재는 또 남북이 경계로 삼는 곳이나 험준하고 심원하여 족히 해와 달의 심처(深處)이고, 용화산(龍華山)의 근원처럼 30리 간에 사람이 없는 경계였다. 머리가 삐쭉 서는 극처(極處)에 서니, 발아래 지나온 것과는 몹시 달라 위태로웠다. 낮에 재아래 신령점(新嶺店)에서 점심을 먹고 저물어 김화현(金化縣)에 들어가 우선 머물 객관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마침내 말을 돌려 은계역점(銀溪驛店)으로 나왔다. 주점 사람이 길가는 사람에게는 방을 줄 수 없다며 받지 않으려 했다. 간신히 한 주점을 꼬여 그 내실을 빌렸다. 거처를 정한 후에 하예(下隸)로 하여금 형리에게 배문(配文)을 부치게 한 것은 중현이 주관(主官)이 어떻게 접대하는지, 거정(居停: 귀양간 사람이 머무는 곳)이 어떠한지를 알고 싶어 급히 들여 부친 것인데, 주관에게 아뢰도록 하니, 물리쳐 보내며 "관가는 이미 공무를 거두었으니 감히 들어가 진달할 수 없습니다. 내일 아침 정배된 양반들이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였다. 군색하고 욕됨이 가소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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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七日。
發退谷。行十里。到四方郊。乃金城金化分路處。而仲賢初欲直就正路去。臨分又不能遽離。寧迂三十里。而爲半夜同處。遂就金化路。偕行。踰馬峴嶺。是嶺又南北所限。而峻險深遠。洽是日月深處。如龍華窮源。而無人境。三十里之間。蓋到頭立極處。逈異於過去足下者。可懍耳。午炊嶺下新嶺店。暮入金化縣。覓暫館處。不得。遂回馬。出銀溪驛店。店人皆以無行次室。不肯納。艱誘一店。借其內室。定處後使下隸付配文於刑吏者。仲賢欲知主官如何接待及居停如何。急急入付。使告官。則退送曰。官家已收公事。不敢入達。明朝正配兩班持而入來。窘辱可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