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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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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1년 1월 4일 / 高宗 8 / 辛未
내 용
식후에 숙헌(叔獻)이 정해 준 여관을 보니 정결하고 적합했다. 선휴(善休)를 송별하고 동협(東峽)의 길로 나아갔다. 대저 이 형이 갈 길이 가장 험하고 멀었으나 혼자 가니 더욱 염려가 될 만했다. 길을 나누어 북쪽 거리로 들어가니, 숙헌이 전송하러 성교(城郊)에 이르렀는데, 보니 처연한 기색이 보여 어린 마음에 염려가 되었다. "두문(杜門)하며 과독(課讀)에 힘쓰고, 잡인이 들어오는 것을 받지 말며, 유배지에서 절도를 너그럽게 하는 것에 힘쓰고, 여관에서 일찍이 강정(講定)한 것을 조용한 겨를에 더욱 잊지 말고 힘쓰라."라고 했다. 이어 말에 올라 미련을 보이지 않고 수 사(舍: 30리)를 가서 돌아보며 피곤하게 걸어 교외로 들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니 곡진한 상념을 풀 수 없었다. 이른바 유엽령(楡葉嶺)을 넘었다. 재는 삼무난령(三無難嶺)과 견줄 수 없었고 험준함과 급경사가 덜한 것 같았다. 사당점(社堂店)에서 점심을 먹고 마현(馬峴)을 넘었다. 현(峴)은 또 높고 험했으며 빙판으로 미끄러웠다. 산을 내려와 신주점(新酒店)에서 쉬었다. 저녁 무렵 원창(原昌)에 이르렀는데 길가에는 거대한 뗏목 같은 호랑이 잡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어 그 깊이와 협곡을 알만 했다. 점인(店人)의 말에는 북방말투가 많았는데 아침저녁으로 나물 반찬을 제공하여 먹을 수 없었으나 상 값은 1전 6푼이었다, 대저 쌀이 귀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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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初四日。
食後見叔獻所定館。靜潔可適。送別善休。就東峽路。蓋此兄前道。最險且遠。而隻行尤可慮念。因分路入北街。叔獻送至城郊。見有悽悵色。穉情可念。勉以杜門課讀。勿受雜人來。款處匪節度。所嘗講定於旅次。從容之暇者。加勉勿忘。因上馬。不視眷戀。想行數舍回見。倦步入郊之狀。繾念不能釋。踰所謂楡葉嶺。嶺與三無難等。而峻急似少之。午炊于社堂店。踰馬峴。峴又高險氷滑。下山憩新酒店。暮抵原昌。路傍設虎穽。如巨筏。其深峽可知。店人已多北關語音。供朝夕素餐。不可食而床價爲一戔六分。蓋米貴故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