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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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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1년 1월 1일 / 高宗 8 / 辛未
내 용
원주(原州)를 출발하여 낮에 횡성(橫城)에서 점심을 먹었다. 정백(正伯)을 만나위해 머물 곳을 정하고 그대로 머물렀다. 점심을 먹고 중현(仲賢)과 정백이 정진사(鄭進士)를 찾아보았다. 바로 젊은 사람으로 신축(辛丑)년 생이었으나 당시 상중(喪中)이었으나 접대가 매우 정성스러웠다. 영남인으로서 이런 행차를 짊어지게 된 것을 하례하고, 정백의 거정(居停)을 담당한 것과 형리를 불러 배문(配文)을 부치는 것 모두 힘써 해주었다. 중현에게 청하여 이르기를 "밖에 있는 여러 어른들은 의당 직접 나가 청해야 하나 상중의 몸으로 편치 않으니, 바라옵건대 어른들에게 전갈하여 함께 들어오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했다. 간절히 말하는 것이 겉치장이 아니었다. 고로 중현이 사람을 보내 함께 들어오기를 청했다. 일행이 함께 들어갔으나 나는 감기가 들어 처음 보는 친구의 집에 편치 않아 병을 핑계대고 들어가지 않았다. 저녁을 먹은 뒤에 여러 사람이 만류를 떨치고 나온 것은 또한 편함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모두 다섯 명이저녁에 들어가니 올린 것이 자못 성대했고 간절하게 머물러 묵도록 붙잡았다고 했다. 그 고아하고 아름다움을 숭상할 만 했다.

이미지

원문

辛未
正月
初一日。
發原州。午炊于橫城。爲見正伯定館。仍留止。午後。仲賢與正伯。覓見鄭進士。卽年少者。辛丑生。而方居憂。款接非常。賀以嶺南故有此行擔當。正伯居停。招吏付配文。皆出力爲之。請仲賢曰。在外諸丈。所當躬進奉請。而喪身非便。幸望丈人傳喝。幷入來。如何。懇辭非外飾。故仲賢送人。請偕入來。一行俱入去。而吾則吟感。不便於初見知舊之家。辭以病不入。夕後。諸人拂挽出來。亦爲就便也。蓋五入夕。供頗盛饋。懇挽止宿云。可尙其雅佳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