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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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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0년 12월 26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새벽에 깨어 일어나 앉으니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이웃의 전염병이 맑게 그쳐서 제사를 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 통읍하고 답답했다. 아침에 나와 보니 눈은 쾌청했으나 바람이 차가워 마치 피부가 찢어지는 것 같아 감히 머리도 내밀지 못했다. 마주 대하며 근심하고 탄식할 즈음에 중현(仲賢)이 들어왔다. 사곡점(蛇谷店)에서 묵었는데 불과 5리도 되지 않는 근처였으나 가마꾼이 강시 형상을 하고, 중현은 비록 가마에 앉아 있었으나 신색이 생기가 없으니 두렵고 염려됨을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식사 후에 하인들이 가기 어렵다고 교대로 말하여 일행은 모두 걱정하였다. 앞으로 남은 길이 매우 멀고 가는 일은 크게 더디어져서 반드시 30~40리를 조금 더 가고자 하여 짐을 꾸리라고 명하여 출발했다.
현(縣)의 거리로 나오니, 밤사이 사나운 바람으로 눈을 쓸어 구덩이를 메워서 평평하여 끝이 보이지 않았다. 발을 떼기만 하면 허리까지 빠지고 날리는 눈이 얼굴을 때려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매번 추위를 두려워한다고 조롱을 받았기 때문에 길 가는 일에 남에게 이끌리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날이면 결단코 잠시라도 걸을 수 없어서 종에게 말을 돌리라고 했다. 이에 여러 행렬이 모두 들어와서 전의 주점에 머물렀다. 그러나 눈과 추위는 하루 이틀 사이에 사라질 것이 아니어서 근심스러움을 말할 수 없다. 길을 나설 때 상자 안에 넣은 것은 김 농암(金農巖)의 『금강록(金剛錄)』이었는데, 함께 한번 보니 정신과 생각이 훨훨 나는 듯 하여 이 몸이 이미 일만이천봉 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가슴 속에 품은 회포가 시원해졌다. 저녁 식사 후에 일기는 조금 평온해지는 것 같으나 하인배들은 아직 잠시도 문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시킬 일이 있었지만 차라리 내가 직접 할지언정 차마 부르지 못했다. 연일 동행하는 가운데 신기한 이야기는 없고 또 피곤하여 게을러지게 되었다.
등잔 아래에서 이리 저리 베고 누워있으니 도리어 마음에 부끄러웠다. 종들 방에 남해(南海)에서 귀양 온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이 고을에는 의례히 주점에서 귀양 오는 사람의 밥을 담당하여 제공했기 때문에 이 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같은 도의 사람이어서 초대해서 보니 바로 이교(吏校) 부류 같았다. 무덤을 파서 귀양 오게 되었는데, 양반과 서로 버티다가 42년이나 된 묵은 묘를 굴거(掘去)했다고 하니, 통탄할만했다. 여러 사람들이 다른 고을의 사람들과는 차별하자며 푼돈을 거두어 내어 은혜를 베푸니 측은하지 않은 자이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아 거둔 수대로 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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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六日。
曉覺起坐。情事莫定。未知隣沴淸熄。如禮行祀否。痛泣且鬱。朝來出見。雪則快晴。而風寒若裂膚。不敢出頭。相對愁嘆之際。仲賢入來。蓋宿於蛇谷店。不過五里之近。而轎軍作僵尸狀。仲賢雖轎坐。而神色無生氣。懍慮不可言。食後下人交告難行。而一行皆悶。前路太遠。而行事太遲。必欲小進三四十里。强令治卜發。出縣街。則道路爲夜來獰風。掃雪塡塞。一平無垠。運足便沒腰。飛雪拍面。不可向遡。余每以畏寒見嘲。故於行事。只爲人所牽。而如此日。斷不可一刻作行。命僕回馬。於是諸行俱還入。前店留止。然雪寒非一兩日可消。愁惱無言。出行。篋中所隨金農巖金剛錄。共看一徧。 神思僊僊。便覺此身已在萬二千峰中。胸懷爽朗矣。夕後日氣似小平。而僕隸猶不欲暫出門外。有所使役。寧躬執。不忍喚耳。連日同行中。無新奇話語。且困憊成懶。燈下只縱橫枕藉。却愧于心。僕奴室聞有南海謫來人。邑例以店次任饋謫人。故留止於是家云。以同道人。故招見。則似是吏校屬。謂掘塚被謫。而與班族相持。掘去四十年已陳之墓。可痛之漢。而諸人皆以與他省別。斂出分餞施惠。不當惻者。而不必異衆。故依數給之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