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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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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0년 12월 25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아침 식사 전에 매암점(梅巖店)의 사람이 또 20량의 소전(小錢)을 가지고 서리를 무릅쓰고 10리를 일부러 와서 바꾸기를 청했는데, 그 마음이 측은했다. 영남의 경계 지역에서는 온갖 물건이 서로 통용되지 않아서 영남에서 쌀을 사 한 해를 보낼 계획으로 삼는다고 하니, 측은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한번 허락한다는 령(令)을 내면, 그 요란한 간청을 견딜 수 없어서 서로 눈짓으로 그것을 금지했다. 마음을 따를 수 없었지만 법령에 있어서 민생의 곤란함이 한탄스러웠다.
식사 후에 떠나서 후평(後坪)에 이르렀다. 비로소 단양(丹陽)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다리를 넘지 않고 북으로 가서 강을 따라 내려왔다. 앞에 간 일행은 말에서 내려 가로질러 산록으로 올라갔다. 나도 뒷쫒아 갔으나 무슨 볼만한 것이 있는지 몰랐는데, 도착하니 바위 절벽이 엄굴(广窟)을 이루어 수백명을 덮을만했다. 밖에서부터 들어와 그윽하고 어두운 곳에 이르니, 굴이 또 두 갈래로 났다. 남북을 통해 몇 리를 가야 끝나는 곳인지를 몰랐는데, 위태하고 두려워 들어갈 수도 오래 머물 수도 없어서 나왔다. 선휴(善休)가 일찍이 단양군 사람들과 동행할 때에 한번 보았는데, 군사람이 말하길, "두 굴은 옛날부터 전해오길 한쪽은 강원도로 통하고 한쪽은 경상도로 통합니다."라고 했는데 허구이지만 기이할만했다. 10리를 가니 소위 만학강(萬壑江)인데, 곧 단양의 산수이다. 이름을 드날리는 것이 귀도(龜島) 같았다. 위아래에 있는 여러 승경은 일찍이 『퇴계집』에서 기록하고 거기에 대한 시를 남겼다. 그 기이하고 뛰어나며 맑은 경계는 바다 밖의 봉래산이나 영주산 같이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 이르러서도 유적을 따라 밟지 못하고 석도(石島)와 담애(潭滙)의 사이에 그리움을 붙이니 부끄럽고 서글픈 밖에 영선(靈仙)에게 조롱을 당하지 않겠는가. 매우 한스럽다. 다만 언 강을 건너갈 때 이박(履薄)의 공부가 좋음을 깨달았다. 평생토록 마음에 담아 둔다면 선생을 쫒아 따르는 일이니, 어찌 부질없이 강가 자갈밭 사이의 남은 승경에 자취를 남기는 것뿐이겠는가. 바라건대 스스로 권면할 뿐이다.
강진(江津)에서부터 5리를 가서 소현(小峴)을 지나니 또한 큰 골짜기였다. 20리를 가서 매포(梅浦) 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오르는 길을 재촉했다. 이날은 다소 온화해서 가는 길이 진펄을 이루었다. 말굽으로 진흙을 막 튀겨서 종의 허리 아래는 흙으로 만든 사람처럼 되었다. 저녁 사이 또 얼게 되어 다리를 옮길 수 없으니, 이것은 또한 팔자이지만 생각을 그만 둘 수 없었다. 소위 안동점(安東店)을 지나 소현(小峴)인 열무치(悅武峙)를 넘어 유원(楡院) 경내에 있는 사곡(蛇谷) 못 앞 등의 여러 주점도 지나 눈비가 사납게 내리는 것을 무릅쓰고 젖은 옷으로 제천현저(堤川縣邸)에 들어갔다. 하인배가 추위에 떨고 짐을 풀 수가 없으니 매우 측은했다. 중현(仲賢)의 가마꾼은 다리가 피곤하여 쫒아오지 못하여 열무현(悅武峴)에서 뒤떨어져 뒷쫒아 오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어느 곳에 머물러 숙박하는지 알 수 없으니 또한 매우 걱정될 뿐이었다. 밤에 눈이 그치지 않고 바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니, 두려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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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五日。
朝前。梅巖店人。又以二十兩小錢。冒霜十里委來。乞換。其情可慽。邊界嶺南之地。百物不得相通。故謂言買米於嶺南爲過歲計。不無惻許之心。而一出令。便不堪其擾懇。相與目禁止之。故不得從心。而只嘆民生之困於法令耳。食後發行。到後坪。始舍丹陽路。不越橋而北。循川而下。前行下馬。橫越上山麓。余亦追躡。而未知有何觀。至則巖崖成广窟。可覆容數百人。自外入到幽暗處。則穴又兩歧。通南北去。不知幾里可窮到極處。懍怵不可入。又不可久。遂出來。蓋善休曾一見於丹郡人同行時。郡人言。兩穴流傳。一通江原地。一通慶尙道云。誇虛。亦可奇耳。蓋善休曾一見於丹郡人同行時。郡人言。兩穴流傳。一通江原地。一通慶尙道云。誇虛。亦可奇耳。行十里。卽所謂萬壑江。乃丹陽山水。擅名如龜島。諸勝之所在於上下者。曾於陶山集。記勝遺韻。起想其奇偉淸境。如海外蓬瀛。而及到近地。乃不能追躡遺跡。寓慕於石島潭滙之間。憐嘆愧悵之外。其不見嘲於靈仙耶。恨恨。但氷江越去之時。覺得履薄之工正好。勿失在平生操持。則追躡先生之事。豈徒江磧間遺塵餘勝而已耶。庶或自勉耳。自江津。行五里。踰小峴。亦名萬壑。行二十里。午站于梅浦市。促發登道。是日稍溫和。路中成泥海。馬蹄排漲。僕奴腰下。便成土偶人。而夕間又成凍。不得運脚。是亦八子。念不能置。歷所謂安東店。踰小峴【悅武峙】。過楡院地境蛇谷池前等店。冒雨雪暴至。霑衣入堤川縣邸。下人輩寒慄。不能弛卜。悶惻悶測。仲賢轎軍。困脚不可追。自悅武峴落後。不見追到。不知止宿何處。又深慮念耳。夜雪下不止。風聲動天地。凜悚不能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