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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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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0년 12월 21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아침 전에 정 우(鄭友)가 작별하고 갔는데 고생스럽게 방문했으니 감사할 만하다. 밥을 먹은 뒤에 눈이 내리는 것이 자못 큰 눈이 내릴 조짐이 있었다. 대저 이번 행차에 항상 눈과 더불어 짝하게 되었는데 실로 우연한 일이 아니니 탄식스럽다. 눈을 무릅쓰고 길을 떠나 두무령(陡霧嶺)을 넘었는데 험준하고 빙판길이 미끄러워 힘들게 걸어서 산을 내려왔다. 이를 미루어 앞길의 일을 알 수 있으니 머리가 무거워서 산 아래 주점에서 잠시 쉬었다. 수도리(水島里)를 물으니 20리가 되었는데 말이 날뛰며 걸어서 타는 것을 견딜 수 없어 성발 형(性發兄)의 말과 바꿔 타고 싶어서 일행이 직로(直路)로 영천(榮川: 榮州)에 가는 것을 전송했다. 우회하는 길로 길을 떠나 낮에 수도리(水島里)에 도착하니 김 형(金兄) 부자가 모두 밖에 나갔으니 섭섭하고 탄식스러움을 말할 수 없었다. 종매를 만났는데 눈물을 흘리며 서로 대하니 마음에 새로운 슬픔이 일어날 뿐이었다. 말을 마당 기둥에 매어두고 와서 노인에게 들어온 이유를 말하니 말하기를 "아이들이 비록 있지는 않지만 이 같은 행차에 어찌 말을 빌려주는 의리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값을 더하여 서로 바꾸니 더욱 어찌 불가하겠습니까만 다만 아이가 서울을 갈 때 말 등에 아궁이처럼 몇 곳에 상처가 나서 장차 타지 못하게 될까 염려하니 어찌 가깝지도 않은 여정에 이 말을 바꾸어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형이 헤아려 하는 데에 달려있지만 매우 낭패입니다."라고 하였다. 타고 간 말을 타고 곧바로 가지 않을 수 없으니, 허리 통증을 가장 견디기 어렵지만 어찌하겠는가? 오후에 길을 떠났는데 중간에 길이 험하여 두려움을 두루 맛보았다. 짐을 풀어서 지고 지나오느라 이 때문에 시간을 소비하여 밤이 깊은 뒤에 비로소 영읍(榮邑)에 들어가니 앞에 갔던 일행 또한 저녁에 되어 겨우 들어가 객사를 정하였다. 저녁밥을 공궤하지 않았는데 길이 심하게 굽지는 않은 것 같을 따름이다. 밤에 객사를 정하여 주인을 불러 종형 별실(別室)의 친가에 대해 물어보니 바로 그 집이고 그의 아버지는 지금 번을 서러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니, 본군(本郡)의 수교(首校)이다. 산운(山雲)에서 배행하던 이는 이곳에서 인사하고 돌아갔으니 대개 그의 아버지의 명을 감히 어길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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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一日。
朝前鄭友別去。辛勤可感。食後雪下頗有兆。大氐此行。始終與雪作伴。實非偶事。可嘆。冒行踰陡霧嶺。險峻氷滑。艱步下山。推此知前路事頭重。暫憩于山下酒店。問水島爲二十里。而鬣子躍步不堪騎。欲換乘性發兄驢子。送一行直路抵榮川。就迂路作行。午抵水島。金兄父子俱出外。悵嘆不可言。見從妹。淚眼相對。情事惹新耳。驢子見繫場柱。旣來爲言入來之故於老人則曰。兒孫輩雖不在。如此之行。豈無借乘之義耶。況加價相換。尤何不可。而但兒子京行時。背傷如爐口數處。將慮棄廢。何可以此換呈於不近之程乎。然在兄諒爲之。甚是良貝。不得不以所騎直去。而最是腰痛大難堪。奈何。午後發行。中路險遷。備嘗危悸。至解卜負過。因失日力。夜深後始入榮邑。前行亦犯暮纔入定。夕食未供。道里則似不甚枉耳。夜定。招主人問從兄別室親家。則乃渠家。而其父方入番不出云。本郡首校也。山雲陪行。自此辭歸。蓋爲其大人命不敢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