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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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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0년 12월 15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아침을 먹은 뒤에 집안의 아우와 조카들이 모두 들어왔다. 대개 극심한 우환에 골몰하여 집밖을 떠나지 못하고 염장한 후에서야 비로소 인사를 할 겨를이 생겨서 함께 내려온 것이니, 슬프고 눈물이 나며 슬프고 눈물이 났다. 오후에 모두 올려 보냈다. 갑 아(甲兒)는 머무르고 남아 떠나지 않았으니, 형벌 받는 것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본들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우스울만하였다. 오후에 우 질(愚侄)이 보러왔다. 집안의 광경은 들으니 더욱 마음이 시릴 뿐이다. 저녁을 먹은 뒤에 관예(官隸)가 와서 일제히 들어오라고 명이 내려왔다고 알렸다. 각관에 통보하여 관문 밖에 모였다. 일곱 사람으로 하여금 두 차례에 걸쳐 불러들이게 하였다. 죄인의 법례에 따라 인도하는데, 크게 기세가 올랐다. 나졸이 네 열로 곤장을 짚고 있었으며, 횃불은 낮처럼 밝았다. 형을 가하는 절차는 덜하고 제함도 없었으나 다만 피부는 상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욕되고 관에 있어서는 선비를 대하는 도리가 아니니, 그야말로 이른바 ‘아래는 그보다 심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형을 마친 뒤에 나와서 여관에 나아가니, 작은 아버지가 채 서산(蔡西山)[채원정(蔡元定)]이 만 리에서 고생하던 일을 외며 끌어다 비교하며 말씀하셨는데 감히 받아들여 감당하지 못했다. 또 김화(金化)는 금강(金剛)의 도계(道界)가 되니, ‘하늘이 절서의 산수를 다 보게 하였네’[天敎看盡浙西山]의 구절을 외면서 위로하며 하교하시니, 종종 두렵고 부끄럽다. 우매한 소자가 다행히 유림의 말석에 참여하여 여러 선비들과 함께 화를 같이 하는 것은 이미 분에 넘쳤는데, 어찌 감히 옛날 군자가 환난 속에서 그 상황대로 처신하는 일을 바라며, 우러러 하교(下敎)의 엄중함에 부응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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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五日。
朝後。家內弟侄輩。俱入來。蓋汨於劇憂。不能離出。而斂藏後。始暇生人事。幷下來。悲浥悲浥。午後。皆上送。而甲兒留止不去。爲觀受刑。見之何益。可笑。午後。愚侄見來。家間光景。聞益胸寒耳。夕後。官隸來告令下一齊入來。通各館。會于官門外。令七人兩次招入。依罪人例引導。大張氣勢。羅卒仗杖四列。火炬如晝。加刑節次。無所省除。只不傷膚而已。在我則辱。而在官則非待士之道。正所謂下有甚焉者也。勘了後。出來就館。少父主誦蔡西山萬里辛苦之事。下敎援比。不敢承當。又以金化爲金剛道界。誦天敎看盡浙西山之句。慰敎之。種種惶愧。愚昧小子。幸厠儒林之末。得與群彦同禍。已過於分。何敢望古君子素患行患之事。仰副下敎之重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