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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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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0년 11월 29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아침 일찍 출발하여 삼교(三郊)에 이르러 수위(首位)의 행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뵙고 전송하였고, 나와 원진(元振), 숙헌(叔獻)은 지름길로 나아가 보촌(保村)에 들어갔다. 찬부(贊夫)는 또 원납전(願納錢)에 관한 일로 붙잡혀서 부로 들어갔기에 집에 있지 않았다. 천리의 여정을 가면서 평탄한 길을 버리고 에둘러가는 길을 잡아 나아갔던 것은 그와 한 번 만나 회포를 푸는 즐거움을 위해서였는데, 이처럼 공교롭게 서로 어긋나게 된 것 또한 이번 행차의 신수(身數)에 관계된 것인지라 한탄하고 서글펐다.
저녁 식사를 한 후 행장을 꾸리고 등불을 들고 가서 강교(江橋)를 건너 녹문(鹿門)에 들어가니 사형(査兄)은 다행히 집에 있었다. 등불 아래에서 몹시 놀라며 손을 잡고 맞이해 들어갔고, 밤에 이야기를 나누며 사뭇 정다웠으니 길 가는 노고를 싹 잊을 뿐이다. 듣기에 우산(愚山) 객이 저녁 식사 전에 이웃집에 와서, 이미 우리들을 배척하여 유배형을 내린다는 관문(關文)이 발급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대개 그는 바야흐로 사람을 뒤에 남겨 뒤쫓게 하여 소식을 전하는 계획을 하였기 때문에 경저(京邸)에 걷는 심부름꾼을 남겨두고 아침저녁으로 소식을 염탐하기를 수시로 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신속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형이 밤새도록 근심하고 탄식하기에 나는 웃으며 응대하였는데, 그는 내가 억지로 웃음을 지어내는 것이라 도리어 의심하니 우습고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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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九日。
早發。至三郊。拜送首位行次前進。余及元振叔獻就徑入保村。贊夫又被願納推捉。入府不在。千里之行。舍坦就迂。爲渠一敍之樂。而巧此相違。亦係今行身數。嘆悵。夕食後戒裝燭行。越江橋。入鹿門。査兄幸在家。燈下驚倒。握手迎入。夜話甚穩。頓忘行勞耳。聞愚山客夕前來隣家。已傳吾輩見逐正配發關之報。蓋其方營躡後之計。故置步使於京邸。探信朝夕陸續。故如是速聞。査兄終夜憂嘆。余笑而應之。還疑强作。呵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