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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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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0년 11월 27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뒤에 오는 행차를 기다려 함께 출발했다. 유곡(酉谷)해저(海底)의 행차 및 신천(新川)하계(下溪)의 행차가 죽령(竹嶺)에 이르러 멀지 않아 장차 길을 나누어야 하니 미리 매우 한탄스러웠다. 몇 리를 가서 북창(北滄)에 못 미처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중현(仲賢)백동(白洞)에서 인사를 일일이 닦기 위해 북행과 가니 더욱 서운하고 탄식스러웠다. 행차가 북창에 도착하자 빙판길이 날이 추워 더욱 굳게 된 것이 육지 같아서 마음 놓고 건널 만 했다.
충주(忠州)를 지나 북문과 남문을 관통해서 지나갔는데, 소위 새로 지은 성곽이 사람으로 하여금 가소롭게 했다. 부질없이 백성들의 힘을 허비하여 이처럼 믿지 못할 역사를 했으니 또한 탄식스러웠다. 수위 어른(首位丈)은 족인을 찾아보기 위해 성(城)의 서쪽 길로 나아갔다. 나머지 행차는 난치(難峙)를 넘어 가서 신주막(新酒幕)에서 점심을 먹었다. 수위 어른의 행차가 뒷쫒아 와서 함께 출발했다. 마침 안동읍상(安東邑商)을 만나 호상 영감(湖上令監)이 탈 없이 고개를 넘어갔다는 기별을 들으니 다행스러움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대개 한양에서부터 수백리의 길이 모두 빙판길로 노인이 말을 타고 갈수 있는 길이 결코 아니어서 매우 염려했던 나머지 이런 소식을 들었으니 그 기쁨을 알만했다.
일행이 수회촌(水回村)에 이르렀는데 한양으로 갈 때 묵었던 주점은 문이 닫혔고 묵을 주점도 없었으며, 하늘이 흐리고 해가 없어 때가 이른지 늦은지 구분하지 못했다. 안보(安保)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원진(元振)을 머물러 두게 하여 평탄한 길로 나아가길 기다려 후행들이 뒷쫒아 올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나는 덕소(德韶), 정백(正伯)과 함께 걸어서 곡천의 반도 이르기 전에 어둠이 이미 생겨 비로소 함부로 행동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진퇴유곡이니 칠흙 같은 밤에 엎어지고 자빠지는 상황이 결코 험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가 아니었다.
어렵사리 수안보(水安保)에 이르러 주점에 들어갔다. 겨울옷이 땀에 젖어 등으로 배어나오니 상처를 받은 것이 적지 않음을 알만했다. 뒤의 행차는 수회(水回)에서 출발하지 않았으리라 여겼는데 오히려 중로(中路)에 거군(炬軍)을 내보낼 줄은 몰랐다. 잠시 후에 과연 뒤따라 왔다. 수위 어른이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고 걸어가게 된 일은 더욱 송구스럽고 민망스러웠는데, 우리의 앞선 행차가 선도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원문

二十七日。
待後行。偕發。酉海行及新川下溪行。就竹嶺者。不遠將分路。預切悵恨。行幾里。未及北滄。企路送別。仲賢亦爲白洞人事歷修。伴北行而去。尤一悵嘆。行到北滄。氷路以日寒堅合■如陸地。可釋心渡。行過忠州。貫北南門歷來。而所謂新築城郭。令人可笑。空費民力。作此無足恃之役。又可嘆耳。首位丈爲覓見族人。就城西路。餘行就徑踰難峙。午站于新酒幕。首位行次追臨。偕發。適遇安東邑商。聞湖上令監無頉踰嶺之奇。幸何盡言。蓋自京城近四三數百里之路。一坂氷程。決非老人騎馬作行之道。所以仰慮之餘。得此信息。其喜可知也。行至水回村。去時所宿之店。又閉門。非徒無可宿之店。天陰無日。不辨日力之早暮。謂可抵安保。留元振待就坦。後行爲追來。余與德韶正伯。步行到谷遷未半。暝色已生。始悔不料妄行。然正所謂。進退維谷。漆夜顚倒之狀。決非險峽過行之時。艱到水安保。入店。冬衣汗霑透背。可知其受傷不少。謂後行不發於水回。而猶不知出送炬軍於中路。俄間果追到。首位丈扶人步行之事。尤深悚悶。由我前行之先導故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