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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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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0년 11월 22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식사 후에 위양(渭陽)에게 돌아간다고 말씀드리기 위해 사재(司宰) 직소(直所)로 나가려고 전현(磚峴) 위에 이르니, 범(凡)이라는 종이 다시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여 길을 돌아 들어가니 자리에 어떤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종형(從兄)이 말하길 "소유(疏儒) 14인이 함께 정배(正配)로 약정되었다고 하니, 어찌 하겠는가"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이치가 비로소 옳은 데로 돌아갑니다. 한 나라는 고사하고 영남으로 말하더라도 몇 백의 선배가 깨부수어 지고 매몰되는 가운데 이러한 재앙을 만났으나 우리 후학 유림은 아직도 편안하게 자고 달게 먹으며 한사람도 가슴을 끊음이 없으니, 화를 받는 일은 아마도 천리(天理)의 당연한 일일 겁니다. 14명의 유림이 일시에 유배되는 것은 돌아가신 지하의 선현(先賢)에게 돌아가 보고하는 자료가 될 것 입니다."라고 했다. 종형 또한 웃다가 그쳤다. 거기에 앉아 있는 자가 말하길, "만약 환수하는 명이 있다면 무사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환수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유림의 이번 재앙은 이미 늦었습니다. 필시 무슨 요행으로 면하는 것을 바라겠습니까?"라고 했다.
이어 나와서 재감(宰監)에게 갔다. 오래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말이 조정의 소문에 이르자 종형과 수작한 말을 모두 아뢰었다. 위양은 처음에는 놀라고 끝에는 웃으며, "너희들이 기꺼이 나아가려는 것은 어찌 근심하고 탄식하겠는가마는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라고 운운했다. 이어 인사를 하자 나와서 전송해주었다. 당렴(堂簾)에 이르러, "잘 가거라. 소문이 과연 그러하더라도 너의 모습을 보니 족히 마음 쓸 것이 없을 뿐이다."라고 했다.
새로운 궁궐로 옮긴 이후 처음으로 한양에 왔으나 아직까지 겨를이 없어 한 번도 나가 둘러보지 못했다. 그래서 노비에게 나귀를 이끌라고 명하여 궐문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두루 돌아 동문에 이르러, 대충 궁궐 담장의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을 보고 나왔다.
저물어 관사로 돌아오니 종형이 창에 기대어 몹시 기다리고 있었다. 형제가 떨어지내던 뒤 끝에 천리 밖에서 상봉했기 때문이다. 조용히 머무를 곳에서 열흘에서 보름간 단란함을 도모할 것으로 여겼으나 이와 같이 바쁘고 소홀히 대했는데, 내일 장차 헤어지고 또 근심스러운 단서가 있으니 이 때문에 마음이 근심스럽고 어지러워 스스로 안정할 수 없었다. 잠시라도 떨어져 나오는 것이 안타까워 마을을 돌아다니자마자 곧바로 들어와 앉았다. 함께 마주하며 저녁을 먹고 고금(古今)의 일을 담론했는데, 비교하며 서로 한탄했다. 밤새도록 잠도 이루지 못하고 이별의 근심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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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二日。
食後。爲告歸於渭陽。出司宰直所。到磚峴上。凡奴急走來呼還入來。疑有何事。回程入去。則坐上有一人。從兄曰。疏儒十四人。幷以正配酌定云。奈何。余笑曰。理始歸可矣。一國姑舍。以嶺南言之。幾百先輩。遭此禍厄於破碎埋瘞之中。而凡我後學儒林。尙今安寢甘食。無一人斷胸。受厄之事。其果天理之當然乎。十四儒一時流配。足爲歸報地下先賢之資矣。從兄亦笑而止。其在坐者曰。若有還收之命。則可無事。而不然。則必不免。余曰。不願還收也。儒林此禍已晩矣。何必望僥倖之免耶。因出去宰監。陪誨移日。語及朝間所聞。而具告從兄弟酬酢之言。渭陽始驚終笑曰。汝所樂就。何用憂嘆。然豈有是也云云。因拜辭而出送。至堂簾曰。好去。所聞雖果。看汝貌。無足爲懷耳。新宮移設後。始有京行。而姑未暇一出周覽。乃命僕牽驢。入闕門。西周行。至東門。略見宮墻之壯麗而來。暮歸館舍。從兄主倚窓苦待。蓋兄弟相逢於阻離之餘千里之外。謂可從容留處。以圖旬望團樂。而如是忙忽。明將別送。而又有所戒慮之端。故愁亂心緖。有不能自定。而又惜暫間離。出方步閭。才入坐矣。對共夕食。因談論古今事。援比相噫噓。竟夕不就寢。別離之愁。猶不入心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