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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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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0년 11월 21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일찍 일어나 소청으로 갔다. 오늘 설청(設廳)하려 했으나 어제 저녁 일의 기미가 있는 이후로 어떤 거조가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종형제가 함께 이르러 바야흐로 처사를 의논하는 일이 미처 결정되지도 않은 때에 문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좌중 사람들은 이미 어제 저녁의 남은 사기(事機)였음을 알고 있었다. 문득 홍의(紅衣)의 서리들이 무수히 난입하여 관문 종이를 펴 들고 손을 휘저으며 함부로 "속히 나시오" "속히 나시오"라고 소리쳤다. 관문의 글을 보니 어제 성명을 써넣은 오른 쪽 14 유생들을 다시 베껴져 있었고, 각 명당 서너 하예(下隸)가 강 밖으로 적출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반리(泮吏)로 하여금 와서 아뢰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수위(首位) 어른이 이르기를 "이러한 광경에 이르니 조정이 유림을 능욕함이 심하다. 내려가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 우리가 4~5일 명을 무릅쓰고 남아 기다리는 것은 복합 후에 처분이 어떠할지라도 선비를 대우하는 방도가 이처럼 천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쫓아 보내는 움직임이 있으니 의리상 잠시도 머무를 수 없는데 하물며 형세에 압박되니 어찌 저항할 수 있겠는가?"라 하고 곧 서리에게 분부하여 이르기를 "영남의 유생들이 쫓겨 나가는 것은 국가에 처음 있는 일인데, 유생된 자로 쫓김을 당했으니 어찌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침을 먹은 후에 행장을 꾸려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서리가 이르기를 "원위가 분부를 내려 조용하게 밥 먹을 겨를이 없으니 동문으로 나가 밥을 사먹도록 하고 곧장 일어나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 위세가 가소로워 제원들이 비로소 조금 꾸짖어 쫒아 버렸는데, 그래도 태학 서리와 수복 사령이었기 때문에 감히 과하게 엄중히 하지 못하고 조금 물러나 문 밖에서 기다렸는데, 아침 식사가 마침 들어와 조용히 밥을 먹은 후에 짐을 꾸려 동문 밖으로 나갔다. 동묘(東廟) 뒤에 있는 여관에 객관을 정했다. 대저 인마 대부분을 구처(區處)하지 못해 사방으로 구하여 세를 낸 것은 하루 이틀 체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길을 떠나는 것에 대해 대책이 없어 종형제와 상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쳐져 주관(主館)으로 돌아가 행장을 갖추어 내일 떠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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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一日。
早起。往疏廳。蓋今日將設廳。而昨夕事機之後。不知有如何擧措。從兄弟偕至。方議處事。未決之際。門外呼喚亂擾。坐中已預料昨夕餘機。俄見紅衣書吏。無數攔入。揭持關紙。撓手妄呼。速起出速起出。見關辭。則更謄昨日所入姓名右十四儒。每名三四下隸。眼目逐出江外。使泮吏來告云。首位丈曰。到此光景。朝廷之辱儒極矣。不去何爲。吾輩之四五日。冒令留待者。意謂伏閤後處分如何。而待士之道。則不如是之賤辱矣。今乃有此敺逐之擧。則義不可暫留。況迫於勢。何可抗耶。乃分付書吏曰。嶺儒見逐。國家初有之事。爲儒被逐。而其可不去乎。朝食後。當束裝尋歸矣。書吏曰。院位分付之下。無暇食從容之事。出東門。買飯爲計。而卽卽起出。可矣。其風稜可笑。諸員始小加叱却。則猶是太學書吏及首僕使令。故亦不敢過爲無嚴。小退俟門外。而朝食適入。從容喫飯後。裝束出東門外。定館于東廟後旅店。蓋人馬。太半無區處。四求出貰。不可不留滯一兩日故耳。余則行事無策。不可不從兄弟相議。故落歸主館。爲辦備行裝明日出去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