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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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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70년 11월 15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출발하려고 했는데, 윤사선(尹士善) 생가가 있는 마을이 20리를 넘지 않는다고 했다. 혹 사선이 상제(祥祭)를 지내고도 머물며 돌아가지 않았다면 길을 돌아가는 수고를 아껴서 한 번 만나 조문하는 인편을 잃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 먼저 출발해서 몇 리를 되돌아갔다. 문득 사선이 만약 이미 우소로 돌아갔다면 공연히 행렬에 뒤떨어졌을 뿐이라고 길 위에서 여러 번 생각하다가 하는 수 없을 말을 돌려 지나쳐 버리는 계책이 되었으니, 매우 서운하고 한스러웠다. 일행을 뒷쫒았으나 아직 출발하지 않아 함께 용인읍(龍仁邑)에 이르니 바로 사선의 고향이었다.
점인에게 그의 가고 머무는 곳을 들었는데, 바로 그의 노비였다. 자세히 말하길, 뒷골짜기에 윤 약산댁(尹藥山宅)이 있는데, 5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동행들과 묵는 주점으로 뒷쫒아 갈 계획을 약속하고 말을 타고 읍북(邑北)으로 길을 찾아갔는데, 선휴(善休) 형도 함께 갔다. 약산댁에 이르러 들어가니 주인이 나와 맞이했는데 매우 바르고 공손했다. 들어가 보니 책상 위에 『맹자』가 펼쳐져 있었는데 한창 읽다가 책을 덮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 인사를 닦은 후에 사선이 가서 거주하고 있는 곳을 물었는데, 조금 전에 10리쯤 떨어진 족인 집에 올라갔다고 하니 만나지 못하는 것이 섭섭했다. 요컨대 하루를 보낼만했다.
선휴는 앞의 행렬과 함께 하기 위해 읍로(邑路)로 돌아갔고, 나는 주인과 이별했는데, 주인은 사선 어른과 함께 와서 그 집에 머무르라고 하는 등의 말로 청하였다. 그 단아하고 공손함은 사선의 기풍이 있는 것 같은데, 모르겠지만 일찍이 가르침을 받은 자가 아니겠는가. 곧바로 먼 산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으로 사양하고 골짜기를 따라 10리를 가니 산허리에 이른바 윤문의(尹文義)의 집이 있었다.
물어서 알고 찾아들어가 마을에 미치지 못하고 산록을 바라보니 무덤에 절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가는 걸음걸이와 절하고 꿇어앉는 것이 멀리서 보아도 사선임을 알만했다. 바삐 걸어가 산 아래에 이르러 서로 조문하기를 마쳤다. 그 친척집을 앞서 인도하여 들어갔는데, 주인과 노소가 기뻐 맞이하는 모습에서 그를 중하게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또한 따라 들어가 좌정했다. 사선은 차례대로 면면히 안부와 성취에 대해 물었는데, 연집(淵楫)에 이르러서는 장진(長進)이 얼마인가라고 물었다. 그가 우리 당(黨)을 돌보는 것이 이와 같으니, 어찌 믿을만한 자가 아니겠는가. 주인은 지금 청송 수령[靑松倅]의 백형이라고 했는데, 사선을 위해 나의 행차를 만류했고 사선 역시 하루 저녁 깊이 토론하고 싶어 했으나 지체해서 앞 행렬보다 지나치게 뒤쳐질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이별을 고했다. 사선이 산이 굽어진 곳에 이르러 전송하며 길을 가리키고 헤어지니 서운함을 말할 수 없다.
골짜기 길을 몇 리가서 한 고개에 오르니 궁안평(弓安坪)을 바라볼 수 있었다. 채찍을 재촉하여 산을 내려와 옆길로 4~5리를 가서 대로에 진입하여 궁안(弓安)에 이르니 일행은 이미 정해진 곳에 들어가 머물고 있었다. 좋은 인사를 닦았고, 먼저 간 동행을 놓치지 않았으니, 매주 묘하고 좋을 뿐이었다. 밤에 마침 안동읍상(安東邑商)을 만나 집으로 편지를 써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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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五日。
將發。聞尹士善生家所在之里。不過二十里。意士善或過祥祭。留止未歸。則不可惜迂路之勞。以失一面弔之便。乃先發。還向昨日歷來路三數里。忽疑士善若已還寓。則空然落後於前行而已。道上三思。不得已回馬。爲戞過之策。而悵恨則深。追及同行。未發。偕行。到龍仁邑。乃士善故土也。聞其去住於店人。則適其奴屬也。詳言。方在邑後谷尹藥山宅。不過五里地。乃約同行所宿站而爲追到計。因騎馬覓向邑北。善休兄亦偕之。及到入藥山宅。則主人出迎。甚雅恭。入見。案上舒孟子。知方讀未及捲也。相修禮後。詢士善行住。則謂言。俄間上去族人家十里地。深悵未卽相握。要之。可◘(遣)於日內。善休還去邑路爲偕前行。余則別主人。主人請與士善丈來宿其家云云。其端恭。似有士善風。未知非曾所受敎者耶。謝以直就山遙。不可復尋之意。因循谷行十里。窮源山腰。卽有所謂尹文義家。問知尋入。未及閭。望見山麓。有拜墳人。其行步拜跪。遠見可知爲士善。忙步及於山下。相弔訖。前導入其族家。主人老少。欣迎之狀。可見其見重。余亦隨入坐定。士善歷問面面安否成就。至及於淵楫。長進幾何。其眷眷於吾黨如是。豈非可恃者耶。主人卽今靑松倅之伯兄云。而爲士善挽留余行。士善亦深欲一宵論討。而行事不可遲滯。過後於前行。不得已告別。士善送至山回處。指路而分。悵不可言。行谷路數里。登一峴。則可通望弓安坪。促鞭下山。行橫路四五里。入大路。至弓安。一行已定所入處矣。得修好箇人事。不失前去同行。甚覺妙好耳。夜適逢安東邑商。修付家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