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객일수록(客日隨錄) > 01권 > 1870년 > 11월 > 13일

객일수록(客日隨錄) 리스트로 첫 페이지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마지막 페이지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WM.1870.4717-20170630.010310400001
URL
복사
복사하기

상세내용

상세내용 리스트
날 짜 1870년 11월 13일 / 高宗 7 / 庚午
내 용
일찍 출발하여 비석거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어떤 걸인이 있었는데, 점주를 뒷쫒아 그에 대해 물어보았다. 진산 인(珍山人)으로 세를 받아 관가의 봉물(封物)을 지고 바치러 왔는데, 돌아가는 길에 한 푼의 돈도 없어서 밥을 못 먹고 얼어 죽는 것 외에 대책이 없다고 했다. 아! 백성의 고혈을 착취하여 그로 하여금 천리 밖에서 지고 와 납부하고 또 노자도 넉넉하게 하지 않아 그를 길가에서 얼고 주리게 하니, 어찌 가련하지 않겠는가. 일행의 남은 밥을 거두어 그를 먹이고 보냈지만, 어떻게 살아서 도착하게 될지 알지 못하겠으니 가련할만하다.
저녁 무렵 이감리(梨甘里)에 도착하여 여관을 찾아 오르내리는 사이에 영남당상 행차가 상점(上店)으로 들어가서 그를 보러갔는데, 가서 만나보니 바로 호상(湖上) 영감이었다. 기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수위 어른(首位丈)의 정의는 더욱 어떠하겠는가. 안부 이외에 시상(時象) 물정을 들었는데, 과연 그것을 헤아려 본바와 차이가 나지 않았다. 호상 영감은 우리와 함께 돌아가고자 하자, 일행은 모두 웃으며, "이 어찌 거듭 분부하실 말씀입니까?"라고 했다. 드디어 이와 같은 수작(酬酢)은 없이 각자의 여관으로 물러나 머물렀다. 밤에 찾아가 문후하고 실기(實記)에 관한 일을 들었는데, 고향에 있을 때 들은 바와 염려하는 바는 아니었다. 대개 대원군은 호상 어른을 특별히 대우하여 벼슬로써 영화롭게 했고, 옷으로서 그를 후하게 대했다. 그러나 실기에서는 판을 태우라는 관문(關文)을 낸 것이 영남 감영에 내려갔다고 하였다. 사람으로 하여금 도모할 마음을 잃게 하여 대략 한스러운 바에 대한 소견을 말씀드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영감은 발길을 돌려 한양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고하여 중지하게 했다.

이미지

원문

十三日。
早發。午炊碑立郊。見有一乞人。受逐於店主。問之則言。珍山人。受貰。負官家封物來納。歸路無一分錢。不得食。凍死外無策。噫。浚民膏。剝民血。使渠背負納于千里之外。而又不優其資。使之凍餒於路傍。豈非可憐耶。收一行餘飯。餽之而送。未知如何生致也。可惻。暮到梨甘里。覓館上下之際。聞嶺南堂上行次。入上店。往見之。乃湖上令監也。欣喜何極耶。首位丈情意。尤何如耶。寒暄外略聞時象物情。果是所料之不差。湖令欲與之偕歸。一行俱笑曰。是豈再敎之言乎。遂無此等酬酢。而退處各館。夜後進候。又承實記事。大非在鄕所聞所慮。蓋院君待接湖丈。特出尋常。爵以榮之。衣以厚之。而於實記。則發燒板關文。而已下去嶺營云。令人失圖。略貢愚見。所恨而又何及也。令監欲回程入京。告以止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