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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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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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30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중현(仲賢), 사첨(士瞻), 원진(元振) 등 여러 형과 함께 명륜당에 들어갔다. 뜰 가운데 한 구석에서 홍문제학(弘文提學) 홍종서(洪鍾瑞)가 시제를 받들고 들어와 판에 걸었는데, 그 제목은 곧 ‘크도다. 성인의 도여![大哉聖人之道]’였다. 시제를 걸자마자 시권을 제출한 자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그 자가 이호준(李鎬俊)이라고 하는데, 이는 매우 미워하는 말인 것 같았다. 저녁에 방을 내며 전교하기를, 장원 이호준은 전시(殿試)에 바로 부치고, 2인은 회시(會試)에 부치며, 7인은 은사(恩賜)를 부치고, 10인은 상격(賞格)에 들어서 합이 20인이라고 하였다. 서울 밖은 한 사람도 들지 않았으니, 우스울 뿐이다.
오후에 제원들이 모임에 왔다. 권우필(權遇必) 어른이 병으로 먼저 돌아가고 싶다고 고하니, 대개 이 어른은 올라온 뒤에 항상 건강하지 못하였으며 여름 내내 설사병을 앓다가 가을이 된 뒤에야 조금 나았는데, 근래 또 설사증세로 괴롭게 지내던 사람이었다. 곁에서 보는 자들이 막 그를 돌려보내고자 하지만 도청에서 먼저 말하는 것을 혐의스러워하고 자신도 혐의스럽고 죄송스러워 감히 말하지 않았다. 이제 힘이 스스로 소청에 근심을 끼칠까 염려하였다. 만일 홍 진사(洪進士) 어른이 이렇게 돌아감을 고함이 있으면 정세는 용서할 만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논의가 그것을 허락하였다.
김공백(金公伯)이 나를 초청하여 어느 한쪽으로 말하기를, "지금 당장의 모양은 하나라도 도리가 없으니 고집할 수 없습니다. 또한 시대의 형편은 앉아서 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우리의 뜻은 곧 하나입니다. 중현은 움직일 수 없는 듯하여 어찌할 수 없으니, 문약 숙(文若叔)이 방손(傍孫)의 이름으로서 소유 가운데 누구누구에게 온종일 아무 아무 곳에 나가보게 하여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던 간에 끝까지 다하는 도리로 삼는다면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출입하는 자가 적어서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는가? 공백의 뜻은 호상 어른이 비록 또한 출입하더라도 반드시 여러 사람이 왕래하는 것이 중함이 되는 것만 못하였다. 그러나 오직 여러 의론이 어떠한지를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양 진사(梁進士)가 술과 떡을 마련하여 대접하였다. 모임 가운데 체면이 그럴 듯하여 기쁠 만 하였다.

이미지

원문

三十日。
晴。與仲賢士瞻元振諸兄入明倫。庭中一隅。弘文提學洪鍾瑞奉題入來掛板。卽大哉聖人之道。才揭。有呈券者或云李鎬俊。而似是甚憎之言。夕時聞榜出傳敎。壯元李鎬俊直付殿試。二人付會試。七人付恩賜。十人入賞格。合二十人。而京外則無一人參入者。可笑耳。午後諸員來會。權遇必丈告病欲先歸。蓋此丈上來後。恒在不健。而終夏患泄。入秋後稍甦。近又以痢症苦度。傍觀方欲其歸。而嫌於自廳先言。自家亦嫌悚不敢矣。今力自慮貽患於疏廳。如洪進士丈有此告歸。情勢可恕。僉議許之。金公伯要余。一邊言。目今模樣。一味無道理。不可膠柱。且時態無坐成事功之道。吾意則一。仲賢似不能動。得了無可奈。則文若叔以傍孫名疏儒中某某員。鎭日出見某某處。以爲成否間究竟之道。如何。余曰。出入者少。而事不成耶。公伯之意。湖上丈雖亦出入。必不如諸人往來之爲見重也。然答以唯諸議之如何。吾何可知也。梁進士辦酒餠進饋。會中體面似然。可嘉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