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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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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29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임천서원(臨川書院) 종을 행장을 차려 떠나보냈다. 호 장(湖丈)이 남촌(南村)으로 갔는데, 대개 이 어른은 조바심을 내는 것이 더욱 심해져서 항상 고아함을 지켜서 이룬 것 없고 허물만 보이나 종숙부는 그가 출입하는 힘이 있는 것을 바람이 없을 수 없어서 늘 금지하려고 하지 않으니, 매우 걱정이다. 호 장이 저녁에 들어와서 교리(校理) 오덕영(吳德泳)은 바빠서 잠시 보았는데, 사이를 틈타 한 마디로 이르기를, "‘강 령(姜令)은 조금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묘한 방법이 없다고 했으며, 한 태(韓台)는 쌀쌀하여 매우 너그럽지 않다고 했다.’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김낙풍(金樂豊)이 와서 용인(龍仁) 이 봉사(李奉事)를 추천하였는데, 막 교우가 곤궁하기 때문에 대원군을 찾아가는데 긴하여 혹 언로가 있을 듯했으나 명목은 남인을 만나볼 수 없는 이치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중현(仲賢)이 그와 함께 가서 그 직소(直所)를 보고 왔다. 또한 권세가 있는 집이어서 다만 얼굴을 익히고 대략 본사를 말하며 직소를 나온 뒤에 다시 와서 말하기로 기약할 뿐이었다. 들으니 춘당대(春塘臺)에서 무시(武試)를 설치한다고 하는데, 대개 거둥할 때 여러 시관과 군관 병마의 재주와 기예를 시험하고 이름을 서총대과라고 하였는데, 상격(賞格)과 고하(高下)를 매기는 데 불과할 뿐이었다. 통화문(通化門)이 열렸고 대로에 진을 쳤으며, 종일 대포 소리가 장내 장중에서 진동하였다. 아마 볼만한 것이 많을 것이다.
저녁 때 구일제(九日製)에 대한 영이 내려온다고 들었는데, 당초에는 절제(節題)를 감회 뒤에 설치하기로 의논했다고 들었다. 이호준(李鎬俊)은 곧 대원군과 매우 친한 자로 동당시 급제자로 정하였는데, 숙모의 병환이 있어 그 사이를 기다릴 수 없다고 염려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 급히 과를 설치하였으나 초시에 상격은 우선 수를 정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미지

원문

二十九日。
晴。治送臨川院隸。湖丈作南村行。蓋此丈生燥尤甚。恒以守高。無成見過。而從叔父不能無望於其出入之有力。每不欲禁止。甚悶。夕時入來。而吳校理德泳則因擾暫見。謂乘間一言。姜令則謂少俟之外無他妙道。韓台則冷落不甚款云耳。金樂豊來薦龍仁李奉事。方以窮交。緊於大院君往見。或有言路。而名目則南人無不可見之理云云。仲賢與之偕往。見于其直所而來。亦熱門只習面。略言本事。期以出直後更來云耳。聞春塘臺設武試。蓋試擧動時。諸武官及軍官兵馬材藝。名爲胥摠隊科。而不過賞格高下而已。開通化門。結陣通街。終日砲聲震於墻內墻中。想多可觀耳。夕時聞九日製令下。初聞節題議設於監會後矣。以李鎬俊卽大院君之切親者。而作定於東堂及第者。有叔母患爲。不能俟其間之慮。故爲其人急急設科。而初試賞格姑未定數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