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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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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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25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새벽에 출궁하여 거둥한다는 것을 듣고 반중의 사람들이 모두 새벽에 동문 밖으로 나갔다고 했으나 한번 관망으로 천안(天顔)을 익히 알 수 있으니 다시 수고롭게 움직일 뜻이 없었고, 향족(鄕族)의 출발이 바야흐로 식후에 있으므로, 나가 놀 수 없었을 뿐이었다. 식후에 세유(世有) 응춘(應春) 무리가 도보로 발섭(跋涉)하니 매우 염려가 되었고 여관에서 송별하니 더욱 마음을 가누기 어려워 큰길까지 전송하고 돌아왔다. 종숙부가 요새 고양(高陽) 행차 때문에 거둥을 볼 때 천안을 볼 수가 없어 한스러워 했다. 게다가 여러 어른들이 속히 입견할 것을 요청했기 때문에 지팡이를 짚고 가서 머물며 중현은 나와함께 뒤에 오게 했다.
포시에 중동문을 따라가서 감천(甘川) 들에 이르니 행차가 먼저 가버려 풀을 깔고 소나무 그늘에 앉으니 모두의 뜻에 맞았다. 여러 어른들을 모시고 환궁하는 모습을 보니. 행차의 깃발과 거마(車馬)와 우모(羽毛)는 익히 보아 신기한 것을 모르겠으나 천안(天顔)은 열흘 사이에 두 번 뵈니 기꺼이 받들고 싶은 마음이 그지없음을 더욱 깨달았다. 어쨌든 외물(外物)을 완호(玩好)하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데 부족하지만 충정의 뿌리는 하늘에 있음을 알겠다.
저녁에 모시고 돌아왔다. 동협(東夾)에서 돌아오는 길에 뒤쳐져 옛 성균관 사람의 상에 들어가 조문하니 가련한 마음에 눈물이 나려 했다. 이어 넘어 와 외삼촌의 객관으로 들어갔다. 들으니 이미 방이 나왔으나 전에 말한 것이라고 했다. 하나도 어긋나거나 빠짐없이 영남의 다섯 사람은 이만석(李晩奭), 류도헌(柳道憲), 이조수(李肇秀), 강면(姜{金+冕}), 손상준(孫相峻)이라 할 뿐이었다. 일소(一所)는 아직 방이 나오지 않았으나 외숙부는 이미 마음을 접고 가망이 없다고 했다. 노경(老境)에 굴욕되니 앙탄(仰歎)을 말할 수 없었다. 비록 스스로 창랑(滄浪)을 취한 것이나 세도가 한스러웠다. 저녁에 돌아오니 피곤함이 매우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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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五日。
晴。晨聞擧動出宮。而泮中諸員幷爲晨出東門外云。而一番觀望。習知天顔。更無勞動之意。且鄕族發行。方在食後。故不得出玩耳。食後世有應春輩發去徒步跋涉。已極慮念。而旅館送別。尤難爲懷。送至通街而還。從叔父以頃日高陽行。觀擧動時未得見天顔。爲恨。且爲諸丈要速入見。已扶杖出往而留。仲賢使與余後來。晡時遂從中東門去。至甘川野。先去行次。藉草坐松蔭。皆意中諸老丈人陪觀還宮御旆。車馬羽毛則習見。不知爲新奇。而天顔則間旬再仰。愈覺欣愛願戴之無已。儘知外物玩好之爲。不足爲情。而彛衷之根於天也。夕時陪還。自東夾入來■(來)來路。落後入弔舊館人喪。憐念欲淚。因踰來入渭陽館。聞已出榜而前所云云。無一違失嶺南五人李晩奭柳道憲李肇秀姜{金+冕}孫相峻云耳。一所則姑未出榜。而渭陽已罷意無望云。老境屈辱。仰嘆無言。雖曰自取滄浪。而世道則可恨。暮後還。困憊殊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