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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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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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24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과유들이 차례로 돌아갈 것을 아뢨다. 응접으로 갑절이나 어지러우니 고뇌를 말할 수 없었다. 응춘(應春)무리가 식후에 들어왔다. 소위 책제(策題)는 학이시습(學而時習)으로 물었으나 조문(條問)은 『논어』 한 구도 없고 주발(周勃)이나 조괄(趙括) 같은 류가 아님이 없었다. 사람의 무식함이 한결같이 이에 이르렀는가. 종군(從君)과 여러 일행이 장차 내일 출발하려 했으나 응춘(應春)과 종형제는 한 푼의 돈도 없었고, 빚진 식비와 여비도 4-5 이틀이면 끝나지만 구처(區處)할 것이 없었다. 소청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오로지 나에게 수세(手勢)를 빌리고자 했으나 소청 또한 남은 돈이 없어 어떻게 치송해야 할지 모르니 근심스럽고 한탄스러웠다. 어두워진 뒤에 들으니 발방(發榜)은 내일 환궁(還宮) 뒤에 나온다고 했으나 반중의 영남 사람들 모모에게는 이미 사사로이 통지하여 참방(參榜)을 알렸다고 하니 탁란(濁亂)됨을 이로 미루어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대원군이 일전에 조성하(趙成夏)에게 재삼 몇 사람을 등용해야한다고 청했으나 조(趙)는 시종(始終) 거부하고 배척하였다. 대원군은 부득이 성하(成夏)에게 가장 긴밀한 사람 7-8인을 두루마리 분부에 넣었는데, 그 무리들이 조성하에게 고하자, 조(趙)가 답하기를, 당신들의 과수(科數)로는 잘 통하지만 그러나 만약 우리 동료를 그 방(榜)에 넣는다면 내가 애매하다고 운운했다. 8인은 모두 두려워하며 동당시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회시(會試)는 장차 어찌 될지 모른다고 했다. 주인 홍이무(洪伊毋)가 듣고 장자 오래가지 못하겠다고 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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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四日。
晴。科儒次第告歸。應接一倍紛擾。苦惱不可言。應春輩食後入來。所謂策題問以學而時習。而條問則無論語一句。無非如周勃趙括之類。人之無識。一至此哉。從君及諸行。將以明日發去。而應春從兄弟。無一分錢。食債及行費。有四五兩可了。而無以區處。以有疏廳之故。專欲假手勢於余。而疏廳亦無留錢。未知如何治送。愁嘆愁嘆。昏後聞發榜。則在明日還官後。而半中嶺人中某某處。則已私通。知參榜云。濁亂推此可知耳。大院君日前請趙成夏。再三要用幾人。趙終始辭斥。大院君不得已擇其最緊於成夏者。七八人入于周紙。分付中其輩告于趙成夏。趙答以尊輩科數好通然。若以吾眷而入於其榜。則余則曖昧云云。八人俱惶恐。皆不見東堂云。會試則未知將如何云。主人洪伊毋聞將不久云。矜念不可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