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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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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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23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일찍 일어나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천상, 법흥, 법전 사람들이 모두 접(接)을 이어 앉았다. 나온 시제는 "間小學遇二首"이었으나 중간에 잘 지어진 글은 있었으나 누구의 글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고 동인끼리 뇌동(雷同)하는 혐의가 있어 결국 동암(東嵓)의 유초(遺草)를 써서 올렸다. 문장은 매우 예스럽고 의미는 넉넉했다. 그러나 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1수는 세유(世有)가 쓰려하는데 중현은 묵묵히 앉아서 내 손이 빌 틈을 기다렸기 때문에 바라보기 참 안타까웠다. 세유가 양여함에 인색함이 없어 첨형(瞻兄)의 손으로 바꾸어 정사하여 납권할 계획이었는데 잘 처리되니 내 마음이 흡족하고 기뻤다. 급히 중간과 끝을 썼으나 다 쓰지는 못했다. 전에 얽어낸 1경(頸)을 세유의 시지로 쓰고 나왔다. 선후(先後)와 좋고 나쁨은 실로 관계가 없었다. 진사 홍회인(洪回人)이 들어와서 형의 편지를 보고 무사히 잘 도착하였고, 병세 또한 심해짐이 없음을 알게 되니 매우 다행이었다. 일소의 시제는 학이시습이라고 했다. 응춘의 무리는 어떻게 시권을 마무리해야할지도 몰랐다. 여기에 있었다면 마땅히 3-4수를 지어야 했는데 곤란함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매사가 순조롭지 못하면 결국에는 반드시 한이 생겨 드러날 뿐이었다. 탄식하고 탄식했다. 들으니 충청감사가 시장(試場)을 열고 상을 당해 분곡했는데, 혹자는 충청도 동당은 파방(罷榜)되었다고 할 뿐이었다. 새 충청감사를 이미 내었는데 대원군의 처남 민치구(閔致九)라고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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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三日。
晴。早起入場。川上法興法田。皆通接而坐。題出間小學遇二首。而中有勝作之文。而未能的知。誰稿嫌於同人雷同。遂以東嵓遺草書呈。文甚古。而意味則甚裕如。然亦何關邪。一首則世有將書。而仲賢默坐。爲待余手餘暇。見甚悶。世有讓與無吝。爲換瞻兄手。精寫納券計。甚善處耳。余心服愛。急草中尾。未盡寫之。前搆出一頸。草以光世。有試紙。而出來先後好否。實無關耳。洪進士回人入來。兄書知無事得達。病勢亦不加劇。甚幸耳。一所題聞學而時習云。應春輩。似不過。未知何以了券也。在此。則應有三四首。不費困艱。每事不隨順。則終必有恨底出耳。嘆嘆。聞■(聞)錦伯開試場。遭喪奔哭。或云忠淸道。東堂則罷榜云耳。新錦伯已出。而大院君之妻男/閔致九云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