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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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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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22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들으니 남연군(南延君)의 연시(延諡)가 내일 있어 연회를 크게 베푼다고 했다. 문오령(文五令)도 차출되었으나 소청의 하인을 빌려 보내도록 했다. 그러나 종일 사역하여 몹시 힘들 것 같이 고민되었다. 식후에 도소(都所)로 갔는데, 이의익(李宜益)의 아들 직장 병교(炳敎)라는 자가 나이는 불과 30이었으나 과거를 보러온 차에 동방(東房)에 거쳐했는데, 통당(通堂) 가림 없는 곳에 좀 시끄럽고 어지러운 상황을 잠시도 볼 수 없어 즉시 내려왔으나 같은 객관에서 앉아 보던 사람은 비위가 매우 좋았다. 원진(元振), 중현(仲賢) 등 여러 형들은 책장(策場)은 초장(初場) 중장(中場)처럼 느슨하면 안 되기 때문에 지금 이미 문에 모인 자가 많다고 했다. 또한 젊은이들이 같이 들어가 무리를 정하고 싶어 사람을 사서 밤을 새우게 하면 문제에서 멀어지는 탄식을 면할 수 있었으나 이술(而述) 어른이 가까우면 무슨 소용이며 멀면 무엇이 해로운가? 무슨 일로 기력을 낭비하여 노둔(勞頓)하게 하는가? 어제처럼 들어가서 빈 곳에 앉아 보고 나와도 무방하다고 운운했다. 노성한 분의 논리가 매우 나의 생각에 맞아 그만두게 했다.
진사 류진휘(柳鎭彙)가 보러 왔다. 원진(元振)의 객관에서 소사(疏事)를 행했다.-원문빠짐- 같지 않은 일을 빈척(擯斥)하는 끝에, 책하며 병산서원의 일은 장차 이루어질 것이나 임천서원의 소사(疏事)에는 우리집안에서 참여할 수 없으니 통곡이라 이를 만 하다고 운운했다. 혐한하여 발명한 기색이 있는 것 같았다. 혹 모처에서 소사(疏事)가 이루어질 길을 보고 그러한 것인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소유들이 오래 머물러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상정(常情)에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이제 가을의 서늘함이 점차 심해지고 얇은 옷으로 지내니 고향 밭의 황폐한 곡물을 모두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소청(疏廳)의 비용 또한 누가 조이고 누가 헐거운지 그리고 그 중에 절박함이 더욱 심한 자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의론이 돌아가고자 했으나 나는 입을 열 수 없어 매우 조급하고 답답하니 어찌하겠는가?
저녁때 장내(場內)에는 우산이 부들처럼 서 있었고 세유(世有)가 나와 반드시 들어가려는 웅천(熊川)의 예기(銳氣)는 참으로 매우 가소로웠으나 임무를 맡겨 하게 하여 마침내 천상(川上), 법흥(法興) 사람들과 함께 요지에 들어가 접(接)을 결정했다고 했다. 밤에 원진(元振), 사첨(士瞻)등 여러 형들이 장내(場內)로 보러 들어왔다. 우산 자리에 우선은 중대를 채워지지 않아 자리를 다투는 혼란은 없으니 인정이 어찌 작은 것에 엄하고 큰 것에 느슨한가? 각각의 앎이 헛것임을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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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二十二日。
晴。聞南延君延謚在今日。大設宴會。文五令亦爲出去。而借疏廳下人許送之。然終日使役。似甚窘悶耳。食後往都所。所謂李宜益之子直長炳敎者。年不過三十。而觀科次來處東房。■(適)通堂無遮之地。輕擾紛亂之狀。不可暫見。郡爲下來。同館坐見者。脾胃甚好耳。元振仲賢諸兄謂策場不可如初中緩遲。今已附門者甚多云。亦欲使少輩同入定接。雇人夜守。可免遠題之嘆。而述丈曰。近何用遠何害。何事空費氣力勞頓耶。如昨日入去。隨空地坐見以出。無妨云云。老成之論。極叶■■(鄭重)鄙見。遂止之。柳進士鎭彙來見元振館。發疏事。言追缺不同事。擯斥之責末。言屛山事將成。而臨川疏事。吾家之不得參。可謂痛哭云云。似有慊恨發明之色。或見疏事可成之路於某處而然耶。未知其由。可菀耳。疏儒之久留思歸者。無怪於恒情。而見今秋凉漸緊。薄衣經過。鄕田■(藿)荒。俱不得不爲關念。且疏廳費用。亦不可不觀孰是緊孰是歇。而其中節拍之尤甚者。議欲許歸。而余則開口不得。極深躁菀。奈何。夕時場內。雨傘蔥立。世有出來。必欲入去。熊川銳氣。誠甚可笑。而任使爲之。遂與川上法興人。俱入定接於要地云。夜與元振士瞻諸兄。入見場內。雨傘處姑未滿中坮。而無爭地之亂。人情豈緊於小。而歇於大耶。可知其各知爲虛事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