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문중 자료 > 일기 > 임천청액일기(臨川請額日記) > 01권 > 1864년 > 8월 >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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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AC+K09+KSM-WM.1864.4717-20170630.01031020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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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짜 1864년 8월 17일 / 高宗 1 / 甲子
날 씨 맑다.
내 용
사촌(沙村) 어르신이 새벽에 출발하려고 하였는데 마삯을 사방으로 구해도 얻지 못했다. 나는 머무르고 있는 말을 태워 보내고자 하였으나 소청(疏廳)은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개 몇 달 동안 헛되이 말을 먹이면서 이후에 혹 말을 쓰게 될 때에는 돈의 배를 내고 출입하니 매우 부끄럽다. 내 생각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스스로 문 밖으로 나가려고 했는데 혹 가는 길에 돌아가는 말을 얻어서 떠난다고 했기 때문에 행자 15량을 지급하였으니 부족한 근심은 없을 듯하였다. 전현(磚峴) 바깥에 이르러서 이별하니 또한 한결같이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밥을 먹은 후에 하양관(河陽官)의 행차가 도착하여 관아의 편지와 군도 평안하다는 편지를 받으니 다행스럽다. 그러나 과거에 떨어졌다고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깝게 하지만 운수에 관계된 것이니 어찌 반드시 안타깝기만 하겠는가. 오후에 주서(注書) 안기영(安基榮)이 문안 왔는데 매우 정성스러우니 감사하다. 안 주서(安注書)가 말하기를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 아래에 청성사(淸聖祠)가 있는데 곧 백이숙제를 제사지내는 서원입니다. 숙종 때 사액하였는데 해주의 유생들이 장차 예로 사양하고 효성이 있는 두 대군(大君)을 추향하는 소를 작성하여 올라갔으나 도동(桃洞)에서 시의가 맞지 않다고 여겨서 그들로 하여금 돌아가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듣기에 그들로 하여금 우선 기다리며 기회를 살피라고 하면서 유생이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 무리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앞으로 혹 앞으로 계를 올릴 방법이 있겠는가. 향방(鄕榜) 중에 자형(姊兄) 김달민(金達民) 씨가 있어서 매우 신묘하고 기이한데 김 공백(金公伯) 부자도 함께 합격하였다고 하니 더욱 기이한 일이다.
강국보(姜國輔)가 밖에 나갔다가 와서 어떤【결손됨】 상소에 대한 일을 전했는데 김병국(金炳國)이 매우 좋아하였고 【결손됨】 대원군(大院君)이 들어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으니 또한 한번 공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크게 운수가 좋아졌으니 만약 그러하다면 장차 더욱 진행시키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무릇 고금도(古今島)와 관계된 일은 저들이 반드시 돌아가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또한 근심스러운 일과 관계된 것이니 탄식할 뿐이다. 그러나 유언비어이니 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침 하양(河陽)의 인편이 와서 서서 답장을 재촉하였다. 부모님께 직접 아뢰지 못하고 편지로 대신 올리니 헤아려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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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十七日。
晴。沙村丈將晨發。而馬貰四求不得。余欲以留馬騎送。則疏廳又不肯。盖空饋數月。而日後或有用馬之時。出倍貰出入甚無色。不能遂己意■。可恨。自家亦欲出門外。或中路得順歸馬以去。故給行資十五兩。似無不足之慮。送至磚峴外。臨別亦一惡境耳。食後河陽官行到。見衙書及君書平安字。可幸。而科榜之沒落。令人寒心。然係是在數之事。何必作恨耶。午後安基榮注書來問。甚款可感。安注書言。海州首陽山下。有淸聖祠。卽夷齊所享之院。肅廟朝賜額者。而其州儒生。以將追享讓孝兩大君治疏。上來。桃洞以爲非時宜。始欲使之還歸。而近聞姑使俟觀機。留置儒生云。渠輩所欲爲者。當前則或爲啓路之道耶。鄕傍中金姊兄達民氏。極爲神奇。而金公伯父子幷參。尤是異事耳。姜國輔出外。而來傳某【缺】川疏事。金炳國欲逞感【缺】。而大院君有聽受之理。又生一敬。大是運氣。若然尤將奈何。大抵古今島。彼家必欲使無還云。亦係憂嘆耳。然流言。盖不可盡信。適有河陽便來。使立促。未及上白。以此代呈。可下悉耳。